ScholarWorks Community:https://scholarworks.sookmyung.ac.kr/handle/2021.sw.sookmyung/1402024-03-27T19:00:27Z2024-03-27T19:00:27Z일본에서의 한국음악학의 전개 양상과 연구 성과 -1945년 이후를 중심으로-이지선https://scholarworks.sookmyung.ac.kr/handle/2020.sw.sookmyung/1594302023-12-19T03:31:44Z2023-10-01T00:00:00ZTitle: 일본에서의 한국음악학의 전개 양상과 연구 성과 -1945년 이후를 중심으로-
Authors: 이지선
Abstract: 이 글에서는 1945년 이후 일본에서 전개된 한국음악학의 발전 양상을 시기별로 살펴보고, 연구 성과를 분야별로 나누어 고찰하였다. 일제강점기에는 조선총독부의 통치 정책과 관련하여 일본인에 의한 조선음악의 조사와 연구가 활발하게 진행되었던 반면에, 일본의 패전 이후로는 한국음악에 관한 연구가 현저히 줄어든다. 따라서 1945년부터 1965년까지를 일본의 한국음악 연구의 ‘공백기’라고 할 수 있다. 1970년대는 일본에서 ‘민족음악학’이 크게 성장하면서 한국음악 연구가 그 일환으로써 진행되었다. 한국음악을 주제로 한 석·박사논문이 나왔고, 관련 연구도 급증했으며, 고려악연구회가 설립(1976)되어 양국 학자들의 정기적인 학술교류가 시작되었다. 따라서 1966년부터 1970년대까지를 한국음악학의 ‘성장기’라고 할 수 있다. 1980년대는 장기간의 현지조사와 유학을 통해 심층적인 연구가 이루어졌고, 여러 세대의 학술 활동으로 연구 건수가 대폭 증가한다. 두 권의 연구서 뺷아리랑의 노래뺸와 뺷소리의 연구뺸가 출판되었으며, 아시아음악 관련 전집에 한국음악 논저가 6편이 수록되는 등 일본에서의 한국음악학의 지위가 견고해진다. 또한 고려악연구회에 의해 양국 음악학자들의 수준 높은 학술교류도 계속되었다. 따라서 1980년대를 한국음악학의 ‘확립기’라고 할 수 있다. 1990년대는 연구 분야가 크게 확대된 시기로, 궁중음악을 제외한 모든 분야에서 연구성과물이 나왔다. 특히 조선시대 음악사와 근대음악사 연구가 시작된 점이 눈에 띈다. 이전보다 연구 건수는 줄었지만, 연구의 다양성이라는 측면에서 볼 때 이 시기에 한국음악학은 ‘안정기’에 접어들었다고 할 수 있다. 2000년대에 들어오면 연구의 수가 이전보다 더욱 감소한다. 이는 3세대 연구자를 중심으로 학술 활동이 전개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시기를 한국음악학의 ’정체기’ 또는 ‘세대교체기’로 볼 수 있다. 이전까지 꾸준히 연구되어 오던 민요와 악기에 관한 논저가 보이지 않는 데 비해, 근대음악사는 이전 시기(1건)보다 비약적으로 증가(12건)한 점이 주목된다. 2010년 이후로는 연구 성과가 큰 폭으로 증가하고, 연구자의 수도 늘어나며, 한국 학술지(한국어)에의 발표도 증가하는 등, 한국음악 연구가 양적·질적으로 크게 발전하는 시기이다. 따라서 이때를 한국음악학의 ‘번성기’라고 할 수 있다. 1945년 이후 현재까지 일본에서 한국음악 연구는 전 분야에 걸쳐 이루어졌음이 확인되었다. 조사된 연구는 총 190건으로,가장 많은 분야는 민속악(53건)이고, 다음으로 음악사(49건), 악기(32건)의 순이며, 그 뒤로 전반(총론, 17건), 음악 양식(14건), 음악 교류(11건), 기타(8건), 궁중음악(6건)이 따른다. 이는 일제강점기에 궁중음악에 관한 논저가 집중적으로 발표된 것과는 대조적인 양상이다. 민속악 연구가 많은 이유는 현지조사를 통한 자료수집이라는 민족음악학적 접근방법으로써 연구를 적극적으로 진행한 결과로 보이고, 음악사 중에서도 근대음악사 연구가 2000년 이후 급증하는 이유로는 일제강점기라는 특수한 상황에 관한 관심과 이 시대에 일본어로 작성된 자료로 인해 일본 연구자들의 접근성이 용이하다는 점을 생각할 수 있다.2023-10-01T00:00:00Z일본에서의 한국음악학의 전개 양상과 연구 성과 -1945년 이후를 중심으로-이지선https://scholarworks.sookmyung.ac.kr/handle/2020.sw.sookmyung/1597192024-02-08T08:00:17Z2023-10-01T00:00:00ZTitle: 일본에서의 한국음악학의 전개 양상과 연구 성과 -1945년 이후를 중심으로-
Authors: 이지선
Abstract: 이 글에서는 1945년 이후 일본에서 전개된 한국음악학의 발전 양상을 시기별로 살펴보고, 연구 성과를 분야별로 나누어 고찰하였다. 일제강점기에는 조선총독부의 통치 정책과 관련하여 일본인에 의한 조선음악의 조사와 연구가 활발하게 진행되었던 반면에, 일본의 패전 이후로는 한국음악에 관한 연구가 현저히 줄어든다. 따라서 1945년부터 1965년까지를 일본의 한국음악 연구의 ‘공백기’라고 할 수 있다. 1970년대는 일본에서 ‘민족음악학’이 크게 성장하면서 한국음악 연구가 그 일환으로써 진행되었다. 한국음악을 주제로 한 석·박사논문이 나왔고, 관련 연구도 급증했으며, 고려악연구회가 설립(1976)되어 양국 학자들의 정기적인 학술교류가 시작되었다. 따라서 1966년부터 1970년대까지를 한국음악학의 ‘성장기’라고 할 수 있다. 1980년대는 장기간의 현지조사와 유학을 통해 심층적인 연구가 이루어졌고, 여러 세대의 학술 활동으로 연구 건수가 대폭 증가한다. 두 권의 연구서 뺷아리랑의 노래뺸와 뺷소리의 연구뺸가 출판되었으며, 아시아음악 관련 전집에 한국음악 논저가 6편이 수록되는 등 일본에서의 한국음악학의 지위가 견고해진다. 또한 고려악연구회에 의해 양국 음악학자들의 수준 높은 학술교류도 계속되었다. 따라서 1980년대를 한국음악학의 ‘확립기’라고 할 수 있다. 1990년대는 연구 분야가 크게 확대된 시기로, 궁중음악을 제외한 모든 분야에서 연구성과물이 나왔다. 특히 조선시대 음악사와 근대음악사 연구가 시작된 점이 눈에 띈다. 이전보다 연구 건수는 줄었지만, 연구의 다양성이라는 측면에서 볼 때 이 시기에 한국음악학은 ‘안정기’에 접어들었다고 할 수 있다. 2000년대에 들어오면 연구의 수가 이전보다 더욱 감소한다. 이는 3세대 연구자를 중심으로 학술 활동이 전개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시기를 한국음악학의 ’정체기’ 또는 ‘세대교체기’로 볼 수 있다. 이전까지 꾸준히 연구되어 오던 민요와 악기에 관한 논저가 보이지 않는 데 비해, 근대음악사는 이전 시기(1건)보다 비약적으로 증가(12건)한 점이 주목된다. 2010년 이후로는 연구 성과가 큰 폭으로 증가하고, 연구자의 수도 늘어나며, 한국 학술지(한국어)에의 발표도 증가하는 등, 한국음악 연구가 양적·질적으로 크게 발전하는 시기이다. 따라서 이때를 한국음악학의 ‘번성기’라고 할 수 있다. 1945년 이후 현재까지 일본에서 한국음악 연구는 전 분야에 걸쳐 이루어졌음이 확인되었다. 조사된 연구는 총 190건으로,가장 많은 분야는 민속악(53건)이고, 다음으로 음악사(49건), 악기(32건)의 순이며, 그 뒤로 전반(총론, 17건), 음악 양식(14건), 음악 교류(11건), 기타(8건), 궁중음악(6건)이 따른다. 이는 일제강점기에 궁중음악에 관한 논저가 집중적으로 발표된 것과는 대조적인 양상이다. 민속악 연구가 많은 이유는 현지조사를 통한 자료수집이라는 민족음악학적 접근방법으로써 연구를 적극적으로 진행한 결과로 보이고, 음악사 중에서도 근대음악사 연구가 2000년 이후 급증하는 이유로는 일제강점기라는 특수한 상황에 관한 관심과 이 시대에 일본어로 작성된 자료로 인해 일본 연구자들의 접근성이 용이하다는 점을 생각할 수 있다.; This article examines the Korean musicology, developed in Japan since 1945, by period and the the results by field. During the Japanese colonial period, Japanese research on Korean music was actively conducted in relation to the ruling policy of the Japanese Government-General of Korea, but after the defeat in World War II, research on Korean music decreased significantly. Therefore, the period from 1945 to 1965 can be called the ‘gap period’ of the Korean musicology in Japan. In the 1970s, as "Ethnomusicology" grew significantly in Japan, Korean music research was conducted as part of it. Master's and doctoral theses on Korean music were published, related research also surged, and the Goryeoak yeonguhoe (Komagaku Research Society) was established (1976) beginning regular academic exchanges between scholars from the two countries. Therefore, the period from 1966 to the 1970s can be called the "growth period" of the Korean musicology in Japan. In the 1980s, in-depth research was conducted through long-term fieldwork and study abroad, and the number of studies increased significantly due to academic activities of various generations. Two research books, Song of Arirang and the Study of Sound were published, and six articles on Korean music were included in a collection related to Asian music, strengthening the status of Korean music research in Japan. In addition, high-quality academic exchanges between music scholars from both countries continued by the Komagaku Research Society. Therefore, the 1980s can be called the "establishment period" of the Korean musicology in Japan. The 1990s was a time when the research field expanded significantly, and research results came out in all fields except court music. In particular, it is noteworthy that research on the history of music during the Joseon Dynasty and modern music began. Although the number of studies has decreased compared to before, in terms of diversity in research, it can be said that the Korean musicology has entered a "stable period" during this period. In the 2000s, the number of studies decreased even more than before. This is because academic activities were centered around the third-generation researchers. Therefore, this period can be viewed as a "stagnation period" or "period of generational change " in the Korean musicology in Japan. It is noteworthy that while there was no articles on folk songs and instruments that had been studied steadily before, modern music history increased dramatically (12 articles) compared to the previous period (1 article). Since 2010, research results have increased significantly, the number of researchers has increased, and the publications in Korean journals (in Korean) have increased, marking a period of significant quantitative and qualitativedevelopment in Korean music research. Therefore, this can be called the "prosperity period" of the Korean musicology in Japan. It has been confirmed that Korean music research has been conducted in all fields in Japan since 1945. A total of 190 studies were conducted, with the most popular field being folk music (53), followed by music history (49) and musical instruments (32), followed by general theory (17), music style (14), music exchange (11), royal music (6), and etc (8). This is in contrast to the intensive publication of articles on court music in Japanese colonial period. The reason why so many studies on folk music seems to be the result of active research using ethnomusicological approach to collecting data through fieldwork while the reason why the study of modern music history has increased rapidly since 2000 may be because of interest in the special situation of the Japanese colonial period and materials written in Japanese in this period, which easily accessible to Japanese researchers.2023-10-01T00:00:00Z『味覚』を表す形容詞述語文の文型と用法박해환https://scholarworks.sookmyung.ac.kr/handle/2020.sw.sookmyung/1516132023-12-19T03:01:45Z2023-08-01T00:00:00ZTitle: 『味覚』を表す形容詞述語文の文型と用法
Authors: 박해환
Abstract: この論文は「味覚」の意味を表す日本語の形容詞述語文の文型と用法を分析した研究である。分析の結果、その主要な内容は次のようであった。 「味覚」の形容詞には「味の好悪、味の種類、味の濃度」などの3種類の意味グループがあった。各意味グループの対象形容詞としは、「味の好悪」には本義的形容詞「うまい、おいしい、まずい」などと転義的形容詞「美しい、素晴らしい」などが、「味の種類」には本義的形容詞「甘い、辛(から)い、渋い、酸っぱい、苦い」などが、「味の濃度」には転義的形容詞「薄い、濃い、強い、弱い」などがあった。 「味覚」の形容詞述語文の主要文型には「N1は・が+形、N2は(が)+N1が+形、N2に+N1は・が+形、N2は・が+N1に+形」などの4種類があった。各文型の主要用法は、「N1は・が+形」文型は本義的形容詞の「味覚」判断の基本的用法、「N2は(が)+N1が+形」文型は転義的形容詞の「味覚」判断の基本的用法、「N2に+N1は・が+形」文型は「味覚」判断の被判断主体の用法、「N2は・が+N1に+形」文型は「味覚」判断の窓口の用法などであった。2023-08-01T00:00:00Z한국과 일본의 고악보 기보 체계의 특수성-기악(器樂) 악보를 중심으로이지선최선아https://scholarworks.sookmyung.ac.kr/handle/2020.sw.sookmyung/1515412023-12-19T03:01:25Z2023-08-01T00:00:00ZTitle: 한국과 일본의 고악보 기보 체계의 특수성-기악(器樂) 악보를 중심으로
Authors: 이지선; 최선아
Abstract: 본 연구는 한국과 일본의 궁중음악과 민간의 여러 음악을 기보한 다양한 형태의 고악보의 역사적 발전 과정을 살펴보고 기보 방식의 비교를 통해 양국 고악보의 관련성과 특수성을 조명한다. 첫째, 한국과 일본 모두 중국의 율자보, 궁상자보, 공척보 등의 기보법을 받아들여 각국의 음악적 상황에 따라 다르게 발전시켰다. 둘째, 한국의 경우 중국의 기보법이 수용되는 상황에서도 음높이 기보법인 오음약보와 음길이 기보법인 정간보가 독자적으로 창안되었다. 셋째, 한일 양국에서 자생한 연주법 기보법은 양국의 음 체계와 악기구조, 음악적 특징의 차이로 인해 고유한 특징이 있다. 한국의 경우 연주법 기보 외에 율자보나 정간보 등을 함께 사용하여 음높이와 음길이를 명확하게 표시한다는 점은 주로 연주법 기보로 이루어진 일본 고악보와 구별되는 특징이다. 넷째, 한국의 고악보는 현악기ㆍ관악기ㆍ타악기ㆍ노래 등을 아우르는 종합적인 악보집이라는 점에서 악기마다 악보가 각각 존재하고 악기에 따라 기보법도 제각기 다른 일본의 고악보와 다르다. 결국 한국과 일본의 음악 및 악기의 독창성은 양국의 고악보에 반영되어 양국의 기보법이 민족적 특징을 갖게 되었고, 양국에 전해진 중국 기보법의 변화에 한 요인이 되었다고 할 수 있다.2023-08-01T00:00:00Z