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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95년(정조 19) 혜경궁의 화성 행차와 봉수당 진찬의 특징The Characteristics of Hwasung march and Bongsoodang feast of Hyegyeonggung in 1795 (the 19th year of King Jeongjo's reign)

Other Titles
The Characteristics of Hwasung march and Bongsoodang feast of Hyegyeonggung in 1795 (the 19th year of King Jeongjo's reign)
Authors
임혜련
Issue Date
Oct-2018
Publisher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학중앙연구원
Keywords
진찬; 진연; 회갑연; 화성; 행행; 혜경궁; 정조; 현륭원; Bongsoodang feast; Hwasung march; Hyegyeonggung; Jeongjo; 60th birthday party
Citation
藏書閣, no.40, pp 224 - 249
Pages
26
Journal Title
藏書閣
Number
40
Start Page
224
End Page
249
URI
https://scholarworks.sookmyung.ac.kr/handle/2020.sw.sookmyung/4849
DOI
10.25024/jsg.2018..40.224
ISSN
1229-7750
Abstract
사도세자의 빈이며, 정조의 어머니 혜경궁 홍씨는 ‘임오화변’으로 파란만장한 생애를 살았던 인물이다. 그러나 정조가 즉위하면서 이로 인해 지위와 위상이 상승하였고, 정조의 지극한 ‘효’의 대상이 되었다. 정조는 살아계신 부모님 혜경궁을 위해 명호 제정, 존호가상과 진연을 통해 효를 행하였고, 그 정점이 1795년(정조 19) 화성 행행이었다. 정조 19년 화성 행행은 사도세자와 혜경궁의 회갑을 맞이하여 정조가 혜경궁을 모시고 현륭원을 참배하고, 화성 행궁 봉수당에서 진연을 시행한 것을 지칭한다. 정조는 화성 성역도 확인하고, 백성들에게 시혜를 베풀며 강화된 왕권을 과시하면서도 국왕 스스로 유교 국가의 덕목인 효를 행하고 신하들과 백성들의 충을 이끌어냈다. 화성 행행은 혜경궁 개인에게는 회한의 세월을 다소 해소할 수 있었던 시간이기도 하였지만 의례적인 면에서도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조선시대 왕실 여성이 궁궐 밖 원거리로 행행하는 것은 이례적인 행보였으며, 역시 궁궐 밖에서 회갑 축하 진찬의 주인공이 된 것도 혜경궁이 유일하였다. 정조 19년 화성에서 치러진 봉수당 진찬의 특징은 첫째, 궁궐을 벗어나 화성 행궁에서 시행된 것을 들 수 있다. 이로 내연과 외연으로 그 시행 장소를 구분할 수 없는 독특한 진찬이 되었다. 둘째, 혜경궁의 지위와 관련하여 상당한 별례가 마련된 것을 특징으로 한다. 전례서에 왕의 생모를 위한 진찬이 규정되어 있지 않았지만, 정조는 혜경궁이 주인이 되는 진찬의 선례도 대왕대비의 예에서 구했고, 봉수당 진찬이 이후 대왕대비 회갑연의 선례가 되었다. 혜경궁이 대비의 지위가 아니었기 때문에 모두 7작을 올리는 연례로 시행되었고, 왕실 친인척인 남성이 참석하게 되면서 내연에서 山呼를 하였다. 이상과 같은 봉수당 진찬의 특징은 혜경궁의 특수한 지위 때문이기도 하다. 그러나 화성 행행에서의 진찬이라는 상징적인 의례를 시행한 것이었고, 정조가 그간 시행해왔던 효의 절정을 보여준 의례로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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