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tailed Information

Cited 0 time in webofscience Cited 0 time in scopus
Metadata Downloads

고려 성종대 거란의 침략과 군사제도 개편The invasion of the Kitan at the reign of King Seongjong in Goryeo dynasty and the improvement of the military system

Other Titles
The invasion of the Kitan at the reign of King Seongjong in Goryeo dynasty and the improvement of the military system
Authors
전경숙
Issue Date
Jun-2014
Publisher
국방부군사편찬연구소
Keywords
the invasion of the Kitan; King Seongjong; 6 Wi (the Six Divisions); Jeolchungbu; 10 Do; Jeoldosa; the military system; 성종; 거란; 거란침입; 서희; 최승로; 절도사; 10도; 군사제도
Citation
군사, no.91, pp 229 - 259
Pages
31
Journal Title
군사
Number
91
Start Page
229
End Page
259
URI
https://scholarworks.sookmyung.ac.kr/handle/2020.sw.sookmyung/52066
DOI
10.29212/mh.2014..91.229
ISSN
1598-317X
Abstract
이 논문은 성종대 거란침입을 통해 고려전기 군사제도가 정비되는 과정을 검토하였다. 성종은 집권 후 崔承老의 상소를 받아들여 국정 전반을 개혁하였다. 이 과정에서 군사제도의 정비도 이루어졌다. 최승로가 제시한 군제개혁의 방안은 불필요하게 낭비되는 군비의 축소와 그를 통한 국가 재정의 확보, 나아가 왕권의 강화이다. 이를 위해 국경을 확실히 정하고, 정예병을 중심으로 군대를 재편성할 것을 주장했다. 그러나 성종이 추구했던 군사제도 개편의 목적은 실질적인 전쟁수행에 초점이 맞추어진 것이 아니었다. 후삼국 통일기 이후로 계속해서 왕권을 견제하던 요소였던 지방 호족들의 군사력의 최소화하면서 유교적 국가체제 확립이라는 거대 틀 속에 중국식 군사제도로의 형식적 완비를 추구했다고 보여진다. 거란의 침입이 전면적인 전쟁이 목적이 아니었기 때문에 전쟁을 수행하는 군조직을 확실하게 볼 수는 없지만, 성종이 직접 군사를 거느리고 참전했던 상황, 전쟁을 치르지도 않고 할지론이 대두한 점 등을 통해 볼 때 군사제도는 중앙군과 지방군 사이의 균형적인 발전이 이루어지지 않은 것으로 생각된다. 거란 침략 이후 성종은 대대적인 군사제도 개편을 모색하였다. 우선 북쪽의 축성을 활발히 하여 안정적인 국경방어선을 구축하였고, 지방제도를 10道로 개편하고 12牧에 節度使를 파견하여 지방행정에 군사적인 성격을 강하게 하였다. 그리고 실질적인 군사의 징발과 동원에 관계된 절충부에 折衝都尉, 果毅 등을 설치하여 체계적인 운영을 모색하고자 하였다. 또한 중앙군인 6위의 조직에도 박차를 가했으며, 무직에서도 上將軍 이하 散員에 이르기까지의 체계를 마련하였다. 10도와 절도사체제, 절충부 등은 이후 현종대에 들어 크게 변화하지만 중앙군의 조직과 무직의 체계 등은 고려전기의 골격을 이루었다.
Files in This Item
There are no files associated with this item.
Appears in
Collections
ETC > 1. Journal Articles

qrcode

Items in ScholarWorks are protected by copyright, with all rights reserved, unless otherwise indicated.

Altmetrics

Total Views & Downloads

BROWS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