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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시기 동계 영역의 변동과 도호부의 이동The Changing of Donggye(東界, Eastern Border) Territory andthe Movement of Dohobu in the Goryeo Dynasty

Other Titles
The Changing of Donggye(東界, Eastern Border) Territory andthe Movement of Dohobu in the Goryeo Dynasty
Authors
이정기
Issue Date
May-2013
Publisher
부산대학교 한국민족문화연구소
Keywords
Donggyae(東界; Eastern Border); Dohobu(都護府); AnbyunDohobu(安邊都護府); Myungju(溟州); Jungju(定州); 동계; 도호부; 안변도호부; 명주; 정주
Citation
한국민족문화, no.47, pp 241 - 267
Pages
27
Journal Title
한국민족문화
Number
47
Start Page
241
End Page
267
URI
https://scholarworks.sookmyung.ac.kr/handle/2020.sw.sookmyung/52140
DOI
10.15299/jk.2013.05.47.241
ISSN
1226-7562
Abstract
고려시기 東界는 北界와 함께 건국 후 영역을 확보하는 과정에서 영역의 변동이 확인되는 유일한 지역이다. 특히, 동계는 고려 초부터 영토를 확보해나가면서 성종 14년과 현종 9년의 지방제도 편제를 통해 영역이 설정되었으며, 이렇게 확정된 영역은 상당한 기간 동안 유지되었다. 이후 몽고의 침입과 원의 雙城摠管府 설치로 기존 동계 영역의 상부에 대한 관할권을 잃게 되었으며, 다시 공민왕이 雙城의 땅을 수복하고 새로운 땅을 개척하면서 기존 동계 영역뿐만 아니라 북쪽으로 꽤 넓은 영토를 확보하게 되었다. 이러한 영역의 변동과정과 함께 주목되는 것이 바로 都護府의 이동이다. 동계는 크게 4단계에 걸쳐 영역의 변동을 겪게 되는데, 이러한 변동 때마다 도호부의 이동과 설치가 이루어졌다. 성종 14년에 和州에 安邊都護府가 설치되었고, 현종 9년에 登州로 안변도호부가 이동하면서 이전 도호부의 치소였던 화주는 防禦使로 읍격이 조정되었다. 또한 쌍성총관부의 설치로 도호부가 있었던 두 곳이 모두 원의 관할 아래 들어가게 되자 그 하부를 중심으로 동계가 설정되고 원종 원년 溟州에 慶興都護府가 설치되었다. 경흥도호부는 공신 관향의 이유로 승격되었기 때문에 원종 9년 공신 취소와 함께 승격된 도호부도 취소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명주의 위상이나 이후 명주의 향방을 통해 봤을 때, 쌍성이 회복되기 이전까지 도호부로서의 위상을 유지했을 가능성이 있다. 또한 쌍성을 회복하고 북쪽의 영토를 확보한 후 동계는 朔方道와 江陵道로 분리․운영되면서 강릉도에는 기존의 명주에, 삭방도에는 定州에 도호부가 설치되어 운영되었다. 이렇게 동계의 영역이 변동함에 따라 시기적으로 맞물려 도호부도 함께 이동하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는 동계의 중심부가 도호부였으며, 도호부를 중심으로 동계가 운영되었다는 것을 간접적으로 암시하는 것이다. 또한 도호부의 이동을 통해 지형적인 결함을 가진 동계가 점차 합리적인 운영 형태를 갖게 되는 것을 보여준다. 구체적으로 각 도호부 설치의 목적을 통해 이러한 사실을 증명할 수 있다. 먼저 화주에 설치되었던 안변도호부는 초기 영토 확장의 결과물로, 군사적인 목적을 띠고 주요한 거점의 역할을 한 곳이다. 당시 화주는 영토 확장 방향의 끝에 위치하여 국경의 의미를 갖는다고 할 수 있다. 두 번째 등주에 설치되었던 안변도호부는 이전보다 확대된 영토를 반영하면서 아래도 상당히 내려오게 된다. 이는 동계 하부인 바닷가를 따라 줄지어 있는 주진현에도 영향력이 미칠 수 있도록 한 조치인데, 효과적인 지방 지배를 위한 것이었다고 할 수 있다. 대신 지형적으로 도호부의 관할 범위가 일정한 거리를 둘 수 없었기 때문에 가장 합리적인 위치에 설정하면서, 동계 하부는 주․속현 체제로 이를 보완하였다. 세 번째 명주는 쌍성총관부를 제외한 동계에서 가장 합리적인 위치와 위상에 걸맞게 설치되었다. 기존에 비해 매우 좁아진 동계이지만, 가장 효과적인 지배 구조를 재구성하고자 하였고 이는 역시 도호부 중심의 운영 체계가 갖는 안정성을 담보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마지막 정주는 삭방도와 강릉도로 분리․운영되는 상황에서 확대된 영역에 맞게 삭방도에 설치되고, 강릉도에는 명주가 도호부의 위상을 지속하게 되는 형태이다. 이는 동계의 지형적 단점과 넓어진 영역을 모두 고려하여 설정된 합리적인 조치로 생각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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