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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에서 攝政·垂簾聽政權의 변화 양상Changing patterns of Regent(攝政)·Sooryeomcheongjeong(垂簾聽政)' ermissions, in Korean History

Other Titles
Changing patterns of Regent(攝政)·Sooryeomcheongjeong(垂簾聽政)' ermissions, in Korean History
Authors
임혜련
Issue Date
Mar-2012
Publisher
한국사상문화학회
Keywords
섭정; 수렴청정; 모후; 태후; 왕후.; regent; Sooryeomcheongjeong; queen mother; empress dowager; queen.
Citation
한국사상과 문화, v.62, pp 173 - 200
Pages
28
Journal Title
한국사상과 문화
Volume
62
Start Page
173
End Page
200
URI
https://scholarworks.sookmyung.ac.kr/handle/2020.sw.sookmyung/52359
ISSN
1229-1749
Abstract
왕조국가의 수장인 국왕은 대외적으로 국가를 대표하며 대내적으로는 국정을 운영하며 통치력을 행사한다. 그러나 국왕이 아직 국가를 다스릴 여건이 마련되지 않았을 때에는 왕을 이끌어 정치를 대신하는 섭정(攝政), 왕과 함께 정국을 운영하는 수렴청정(垂簾聽政)이 행해졌다. 섭정과 수렴청정권의 향배는 시대에 따라 변화하였다. 고구려 태조왕은 앞서 모본왕을 시해한 세력에 의해 추대되었고, 모후인 부여인 태후가 섭정하였다. 신라 진흥왕대 섭정을 하였던 지소태후는 왕의 모후라는 점과 혈연적인 우세 속에 섭정이 가능하였다. 혜공왕대 섭정한 만월부인도 역시 왕의 모후로서 섭정하였다. 고려시대에는 목종대 모후 헌애왕태후 황보씨, 헌종대 사숙태후 이씨가 섭정을 하였다. 원간섭기 충목왕대에 모후 덕녕공주가 섭정하였고 충목왕 사망 후 희비 윤씨 소생의 충정왕이 즉위하였을 때도 덕녕공주는 섭정을 하였다. 고려시대 섭정은 왕의 모후가 하는 것으로 관례화되었다. 왕의 모후는 아들이 즉위한 후 태후로 책봉되어 섭정을 담당하였다. 아들이 왕이 되지 못하였을 경우 왕비의 칭호는 왕후였던데 비해 아들이 왕이 되면서 이들에게는 태후의 칭호와 이에 상응하는 존숭의 제도·의례가 부여되었다. 조선시대에는 왕비가 정치를 대신하는 섭정에서 왕과 왕비가 함께 정국을 운영하는 수렴청정으로 변화하였다. 성종대 정희왕후는 성종의 모후였던 소혜왕후 한씨가 있었음에도 왕실의 가장 어른으로 수렴청정권을 행사하였다. 이는 이후 조선의 선례가 되었다. 이는 왕의 모후로서가 아니라 선왕의 적처로서 선왕의 권위를 바탕으로 수렴청정하는 왕비의 위상을 보장해 준 것이었다. 이상과 같이 한국사에서 섭정·수렴청정권은 삼국시대 모후 섭정에서 고려시대 태후섭정으로, 조선시대 선왕의 비이며 왕실의 가장 어른이 행하는 수렴청정으로 변화하였다. 이는 왕비에 의한 대리정치가 사적 관계에서 공적 관계로 발전한 것이며, 관료제 발전과 더불어 그 역할과 명분을 합리화한 역사성을 반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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