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소특정적 연극에서 ‘장소’와 ‘장소성’의 문제 - 서울의 도시 이동 퍼포먼스를 중심으로 -

Abstract

최근 한국연극계에도 장소특정적 연극을 표방하는 작업들이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장소특정적 연극은 공연이 이루어지는 장소의 역사적, 정치적, 사회문화적 맥락에 주목하는 동시에, 해당 장소에서 일상적으로 이루어지는 ‘지금-현재’의 삶, 소속된 공동체의 특징과 정체성 문제에 관심을 보인다. 때문에 장소특정적 연극은 정치사회적 비판의식과 참여의식을 드러내기도 하고, 기존의 제도로서의 연극에 대한 비판적 논평적 작업이 되기도 하며, 전통적 연극 관습을 탈피함으로써 형식적 실험성을 띠기도 한다. 그러나 이러한 활발한 실천에 비해 장소특정적 연극에 대한 이론적, 비평적 작업은 상대적으로 빈한하다. 한국연극의 장소특정적 연극에 대한 이론적 연구가 필요한 것은 연극 실천가들과 제작자들의 선언이나 표면적 새로움만으로 그것의 의미를 규정할 수 없기 때문이다. 표면적으로 새로워 보이는 현상도 예술사, 연극사적 맥락에서 보면 오랜 전통과 잊힌 연극 유산의 재발견일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이 작업이 지니는, 공연예술의 제도와 장르적 관습에 대한 도전, 사회문화적 비판의식, 정치적 진보성, 삶과 연극의 경계 해체 등은 1960년대 연극실험, 특히 환경연극을 연상시키기도 한다. 때문에 장소특정적 연극의 의미를 정확히 파악하기 위해서는 유사한 모토와 형식을 지니고 활동하였던 앞선 작업들, 즉 환경연극, 거리극 등과의 비교가 필요하며, 더불어 예술장르를 통해 장소특정성 문제를 앞서 실천했던 시각예술분야와의 비교도 필요하다. 그간 장소특정성 연극에서 가장 먼저 주목을 받은 점은 ‘공간의 새로운 확장’과 ‘관객의 적극적 참여’였다. 그런데 사실 이것은 장소특정적 연극만의 특징은 아니다. 중요한 것은 장소특정적 연극의 출발점이 되고 있는, ‘공간(space)’가 아닌 ‘장소(place)’, 그리고 공연예술에서 ‘장소성(placeness)’이 지니는 의미이다. 장소특정적 연극에서 ‘사이트/장소(site)’는 단순한 공간이나 환경이 아니다. 장소특정적 연극에서 ‘장소성’은 그 무엇보다도 앞서 선행하며 작품의 내용과 형식도 바로 이로부터 기인한다. 장소특정적 연극에서 장소는 곧 ‘형식’이고 ‘내용’이며 장소 그 자신이 ‘스토리텔러’이다. 때문에 21세기 초 공연예술계에 급격하게 확산되고 있는 장소특정적 연극의 의의를 제대로 파악하기 위해서는 현장예술이자 공연예술로서의 연극의 매체특정성과 관련하여 ‘장소성’의 의미를 고찰해야 한다. 본 연구는 최근한국연극계에서 공연된 장소특정적 연극의 의미를 장소와 장소성의 문제를 중심으로 고찰한다. 이를 위해 첫째, ‘공간’ ‘장소’ ‘장소/사이트’ 등으로 번역되는 ‘space’ ‘place’ ‘site’ 등의 개념을 정리한다. 철학, 사회학, 지리학 등의 분야에서 광범위하게 논의된 관련 개념을 아우르며, 이들이 공연예술분야에 던져준 시사점을 연구할 것이다. 더불어 장소특정적 예술이 가장 먼저 실천되고 연구된 미술 분야를 중심으로 하여 인접예술분야의 장소성의 의미를 정리한다. 그런 후 장소특정적 연극과 유사한 형식 실험을 보이는 환경연극, 거리극과 비교하며 장소의 의미를 고찰한다. 마지막으로 이를 바탕으로 하여 오늘날 장소특정적 연극의 장소, 장소성이란 무엇인가를 도시 체험, 개인 체험 프로젝트 중심으로 진행된 한국의 장소특정적 연극을 중심으로 논의한다. 이러한 연구를 통해 21세기 들어 한국연극계의 중요한 흐름을 형성하고 있는 장소특정적 연극 연극의 특징과, 동시대적 의미, 연극사적 의의를 정리하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