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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말기 조선방송협회를 통해 살펴본 방송통제Broadcasting control surveyed through Chosun broadcasting association during the last period of Japanese imperialism

Other Titles
Broadcasting control surveyed through Chosun broadcasting association during the last period of Japanese imperialism
Authors
강혜경
Issue Date
Dec-2011
Publisher
한국민족운동사학회
Keywords
조선방송협회; 경성방송국; 라디오방송; 방송통제기구; 이중방송; Chosun broadcasting association; Gyeongseong Broadcast Station; Radio broadcasting; Broadcasting control mechanism; Dual broadcasting
Citation
한국민족운동사연구, v.69, pp 305 - 344
Pages
40
Journal Title
한국민족운동사연구
Volume
69
Start Page
305
End Page
344
URI
https://scholarworks.sookmyung.ac.kr/handle/2020.sw.sookmyung/6847
ISSN
1226-9980
Abstract
일본제국주의는 본국 일본에서 1925년 3월 라디오 방송을 시작하였으며, 1927년 식민지 조선에서도 경성방송국을 개국하였다. 일제 식민지하에서 라디오 방송은 새로운 근대적 형식의 미디어였으며, 한편으로 식민통치의 도구로도 기능하였다. 라디오방송은 식민지 현실이라는 한계 속에서도 선진기술문명으로 대중문화를 전파하고 정보를 전달하는 역할을 하면서 근대적 매스미디어로서 식민지 조선의 사회와 문화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 1933년 이중방송 실시를 기점으로 조선어 방송을 실시하고, 출력을 대폭 증강하는 한편 전국적으로 방송망을 확장하였다. 이를 위해 이사장이 중심이 되었던 사단법인 경성방송국은 1932년 4월 총재제도를 도입하며, 조선방송협회로 개편되었다. 라디오 방송 초기에는 수신기를 구입하고 청취료와 전기료가 부담이 되어 주로 일본인들이 청취자의 다수를 차지하였으나, 1933년 이중방송의 실시로 제2방송이 조선어로 방송되자 조선인 청취자의 수는 급증하였다. 1930년대 중반 이후 일제가 라디오를 전쟁수행과 식민지 통치의 중요한 매체로 이용하기 위해 보급을 촉진한 것도 조선인 청취자의 수가 증가하는 요인이 되었다. 이 같은 조선인 청취자의 증가는 일제의 라디오에 대한 통제를 강화하는 한 요인이 되었다. 경성방송국 조직구성을 보면 다른 식민지 통치기구에서와 마찬가지로 조선인 직원보다는 일본인 직원이 다수를 점하였다. 1933년 조선인 직원 수는 전체 총수의 절반 정도였으나 1941년에는 40%이하로 줄었고, 1944년에는 25%로 더욱 줄었다. 부서간 직원분포에서도 조선인 직원들을 주로 가입, 요금 등의 업무를 담당하는 총무부와 사업부에 배치시켜, 이들을 조선인 청취자 확보를 통한 재정안정책과 관련된 부서에서 활용하였음을 알 수 있다. 또한 조선방송협회의 조선인 임원진을 보면 거의 일제에 협력하던 사람들로 구성되어 일제의 라디오에 대한 통제에 문제제기를 하기는 어려운 구조였다. 조선인 청취자가 급증하자 방송에 대한 통제가 강화되었다. 1934년 7월 31일 제1 제2방송에서 방송되는 모든 프로그램을 연구, 심의한다는 명목 아래 방송심의회를 조직하였다. 1935년 4월에는 방송편성회를 설치하여 방송관리제도를 더욱 강화했다. 이 방송편성회는 1937년 4월 17일 경성중앙방송국의 조선어방송이 50kW로 증강되고 7월 7일 중일전쟁이 발발하면서 한층 강화되어, 조선총독부에 정보위원회를 설치하고 동시에 경무국 문서과에 보도계를 신설하여 여기에서 모든 방송뉴스와 프로그램을 통제하였다. 이 방송편성회에서 검토하여 편성된 프로그램은 또다시 방송 하루 전에 체신국 감독과의 사전 검열을 받게 했으며, 나중에는 경무국 문서과 정보계의 사전검열까지 받은 뒤에야 방송할 수 있었다. 1937년 6월 새로 편성과를 신설하여 편성업무를 독립시켰는데 이는 전쟁수행을 저해하는 내용을 사전에 차단하고자하는 의도였다. 이상과 같은 방송관리제도는 점차 전세가 급박해짐에 따라 해를 거듭할수록 더욱 강화되었다. 1941년 4월에는 국민정신총동원연맹의 인사들까지 참석하는 총력방송연구회를 신설하여 매달 1회씩 개최했으며, 방송심의회도 이해 12월에 총력방송심의회로 개편됨으로써 방송은 오직 전쟁방송으로서의 기능만을 강요받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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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ang, Hye Kyu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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