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朝鮮前期 李世佐의 생애와 甲子士禍Research between the Life of Lee-Sehjoa and Kapjasahwa in the early Choson period.

Other Titles
Research between the Life of Lee-Sehjoa and Kapjasahwa in the early Choson period.
Authors
한희숙
Issue Date
Sep-2009
Publisher
조선시대사학회
Keywords
Lee Shejoa; Yonsankun; Kapjasahwa; Deposed King's wife Yoon; A tendency of contempt the king; Lee Shejoa; Yonsankun; Kapjasahwa; Deposed King's wife Yoon; A tendency of contempt the king; 이세좌; 연산군; 갑자사화; 능상풍조; 광주 이씨; 폐비 윤씨
Citation
조선시대사학보, no.50, pp 41 - 71
Pages
31
Journal Title
조선시대사학보
Number
50
Start Page
41
End Page
71
URI
https://scholarworks.sookmyung.ac.kr/handle/2020.sw.sookmyung/7522
ISSN
1226-5705
Abstract
본고는 조선 전기 이세좌의 출생과 그의 가계ㆍ가문, 관직활동, 그리고 甲子士禍와의 관련성을 살펴본 것이다. 15세기 중엽 최고의 문벌가문인 광주 이씨 가문의 李克堪의 아들로 태어난 이세좌는 예종대 내섬시 판관으로 벼슬에 나아간 이후 연산군대까지 30년 이상 관직생활을 하며 勳舊대신으로 성장하였다. 그는 戊午士禍 때 김종직을 처벌해야 한다고 주장한 인물로 士林에 대해서는 비판적 입장을 보였다. 그런데 이세좌는 연산군 9년 양로연에서 어사주를 엎은 사건으로 인해, 그리고 또 홍귀달의 불경죄를 빌미로 능상풍조를 조장한 핵심인물로 간주되어 연산군에게 탄압을 받았다. 당시 대간ㆍ대신과의 권력 관계에서 자신을 업신여기는 풍조가 만연하다고 생각한 연산군은 불경죄를 내세워 신료들을 억압하려 하였다. 그 첫 번째 희생자가 과거 성종의 명에 따라 폐비 윤씨를 죽이는 일의 책임을 맡았던 이세좌였다. 이세좌는 윤씨를 죽이는 일에 있어 성종에게 간곡하게 반대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또 당대 최고 훈구가문의 대신으로 능상풍조를 조장했다는 이유로 왕권을 절대화하려는 연산군의 첫 번째 희생자가 되었다. 연산군의 이세좌에 대한 처벌은 甲子士禍를 알리는 신호탄이었으며, 그 처벌과정은 왕권을 제약하는 대간과 자신의 절대왕권 구축에 걸림돌이 되는 훈구세력을 제거하기 위한 실천과정이었다. 연산군은 이세좌의 처벌과정에서 그의 불경을 제대로 논박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대간 및 홍문관원과 대신들을 탄압하고 논죄하였다. 이세좌는 왕권을 절대화하려는 연산군의 희생타로 갑자사화의 발단을 제공하였고, 그 과정에서 유배와 剖棺斬屍ㆍ碎骨飄風이라는 엄청난 정치적 시련을 당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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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n, Hee Sook
문과대학 (역사문화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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