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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본 논문에서는 조선 왕실의 악기수요와 대응에 대한 역사적 전개양상을 살폈다. 악기는 국가의 제례와 연향의 주요 구성요소였으므로 왕실에서는 이의 구비와 제작, 관리에 깊은 관심을 기울였는데 그 수요와 대응 양상은 시기에 따라 차이가 있었다. 세종조의 악기 제작 및 조선후기의 악기제작 관련 의궤 (『제기악기도감의궤』, 『인정전악기조성청의궤』, 『경모궁악기조성청의궤』, 『사직악기조성청의궤』) 외에 조선조 왕실악기 수요 및 대응 양상을 전반적으로 조망한 연구는 없었다. 이에 본고에서는 『조선왕조실록』에서 악기 제작과 관련된 기사를 조사하였다. 아울러 현전하는 조선 후기의 연향관련 의궤에도 악기의 신제(新製) 및 수보(修補) 내용이 기술되었으므로, 이 내용을 포함하여 시기에 따른 수요의 추이와 이에 대하여 어떻게 대응하였는지에 주목하였다. 악기의 수요는 ①국가의 예악의 전반적인 미비(건국초와 임진왜란 직후), ②악기의 노후와 파손․도난․화재 등에 의한 결손(성종․중종․명종․영조․순조), ③신규의례 악기(영조-황단, 정조-경모궁제례, 고종-원구) 및 의례의 주악 전통 복원(숙종조의 담제(禫祭) 후 풍악), ④제작기술 부족으로 음정이 불안정한 경우(세종․중종․명종․영조), ⑤악대 편성에서 누락된 악기의 보충(숙종:敔․塤), 영조-管簫笙琴), ⑥악대 편성에 신규로 편성되는 악기 보충(순조:운라․부구 등, 헌종:笳․洋琴, 고종:특종․특경), ⑦의례용 악기와 습악용 악기의 구비(성종), ⑧전정 의례 악기 전반적 수보(광해군․고종), ⑨계기에 따른 궁중연향의 시행(숙종 이후 고종), ⑩연산군 때에 발생한 연향악기의 이례적인 요구, 등이었다. 이와 같은 수요에 대하여 조선왕실에서는 ①신규제작(세종․세조․성종․중종․선조․인조․광해군, 숙종․영조․정조․순조․헌종․고종) ②중국에 자문(중종․명종․광해군․영조) 혹은 수입(태종․영조), ③증수 및 교정(矯正), 수보(修補)의 방법(세종․세조․성종․중종․선조․인조․광해군, 숙종․영조․정조․순조․헌종․고종)으로 충당하였다. 신규제작은 주로 악기도감(樂器都監)․악기감조색(樂器監造色)․주종소(鑄鐘所)․종경청(鐘磬廳)․악기조성청(樂器造成廳) 등을 설치하여 진행되었으며, 경우에 따라서는 악학도감(樂學都監)․장악도감(掌樂都監)․장악원(掌樂院) 등이 주관하거나 공조(工曹)에서 제작하였고, 연향악기는 진연청의 관리 하에 해당 부서의 업무협력으로 충당되었다. 각 시기마다 음률에 밝은 관리 및 공장(工匠)들을 중용하였는데, 세종 때에는 박연․남급(南伋)․이천(李蕆)․장영실(將英實), 중종 때에는 이청(李淸), 정자지(鄭子芝)가, 명종 대에는 조성(趙晟)이, 영조 때에는 이휘진(李彙晉)과 이연덕(李延德), 최천약(崔天若)이, 정조 때에는 장악원 제조 이종호, 김용겸, 판중추 서명응과 서생 서상수 등이 천거된 바 있다. 한편, 시기별 수요와 대응 양상은 크게 4시기로 정리되었다. ①건국 초부터 1431(세종 13)년까지, 왕실악기제작의 기반이 조성된 시기, ②성종에서 명종 때까지, 세종 조에 완비된 악기의 결손을 부분적인 증수로 대응한 시기, ③선조에서 현종 때까지, 전란으로 인해 왕실악기가 전반적으로 미비하게 되었으나 국가 재정 악화로 악기 제작이 총체적으로 진행되지는 못하고, 제향 및 연향의 필요에 최소한으로 대응한 시기, ④숙종 이후 조선말, 다양한 수요에 안정적으로 악기를 충당한 시기이다.
키워드
- 제목
- 조선조 왕실악기 수요와 대응의 역사적 전개 양상
- 제목 (타언어)
- Historical Research on the Demand for Supply of Musical Instruments in the Joseon Court
- 저자
- 송혜진
- 발행일
- 2013-12
- 저널명
- 한국음악연구
- 권
- 54
- 페이지
- 147 ~ 16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