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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지금까지 헤겔과 슐레겔의 관계에 대한 철학적 연구는 주로 헤겔의 관점에서 슐레겔을 헤겔이 어떻게 비판했는가에 초점이 맞추어져 왔다. 그런데, 슐레겔에 대한 헤겔의 비판은 헤겔 자신의 관점에서만이 아니라 가능한 한 어느 쪽에도 편중되지 않은 객관적인 관점에서 좀 더 면밀하게 그 정당성이 재검토될 필요성이 있다. 여기서 다루어져야 하는 문제들은 낭만적 아이러니와 주관성, 그리고 그 철학적 기반으로서 피히테 철학과 두 사람의 관계 문제이다. 이와 관련하여 헤겔의 슐레겔 비판이 지니는 의미는 다음과 같이 재정리가 가능하다. 첫째, 헤겔은 자아의 절대적 주관성이 모든 객관을 무화시켜 버린 상태가 낭만적 아이러니로 표현된다고 주장하면서, 실체적이고 인륜적인 내용을 부정하고 파괴하기만 하는 슐레겔의 입장을 공허하고 가식적인 주관주의로 비판한다. 그러나, 슐레겔이 주관의 무한성과 더불어 주관의 자기제한도 강조한다는 점을 고려할 때, 이러한 헤겔의 비판은 일면적임이 드러난다. 오히려 예술적 상상력과 독창성에 관한 논의에서 헤겔 자신도 주관뿐만 아니라 객관적 측면을 강조한다는 점에서 우리는 슐레겔과 유사한 입장을 재확인할 수 있으며, 이를 근거로 헤겔 자신이 명시적으로 밝힌 것과는 달리 헤겔과 슐레겔의 입장 차이가 상당히 좁혀질 수 있는 가능성을 모색해 볼 수 있다. 둘째, 헤겔은 슐레겔 비판에서 슐레겔의 사상을 피히테 철학과 시종일관 밀착된 관계로 보고 있지만, 정작 슐레겔 자신은 1796년경부터 스스로 피히테 철학으로부터 거리를 두면서 피히테의 토대주의를 강하게 비판한다. 이 비판의 주요 근거는 피히테 철학이 인간의 현실적인 활동과 행위를 포괄하는 역사적인 면을 다루지 못했다는 점이고, 이 점에서 슐레겔의 입장은 피히테보다는 오히려 헤겔에게 가까운 것으로 판단될 수 있다. 왜냐하면 헤겔은 자신의 철학이 슐레겔보다 피히테에게 더 친근하다는 것을 주장하고 싶어했지만, 헤겔의 역사주의적 관점은 피히테가 아니라 슐레겔에 가깝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슐레겔에 대한 헤겔의 모든 비판은 결국 슐레겔이라는 사상가와 그의 철학적 방법론과 입장으로 귀결된다. 즉 헤겔의 슐레겔 비판은 이론에 대한 비판만이 아니며, 더 나아가 철학함에 있어서 어떤 태도와 입장을 취하느냐, 라는 실천적 문제와 연관된다. 헤겔은 완결적이며 체계적인 방법에 기초해 슐레겔을 비판하지만, 이에 비해 슐레겔은 그러한 체계의 한계를 직시하여 오히려 미완결적이며 비체계적인 아포리즘적 단편을 선호했다. 헤겔은 슐레겔이 자신처럼 합리적 논증과 체계적 방법을 통해 철학하지 않았다고 슐레겔을 비판하지만, 그러나 이러한 비판은 헤겔의 고유한 입장에 편중된 비판이며, 애초부터 슐레겔에게는 합당하지 않은 요구라고 할 수 있다. 이처럼 비록 헤겔과 슐레겔이 철학적 방법과 입장에서 분명히 차이나기는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사람 모두 초기부터 감성과 이성, 포에지와 철학과 같은 대립적 요소들을 조화시키려는 문제의식을 공유하고 있었다는 점에서, 이상과 같은 면밀한 재검토를 통해 두 철학에 대한 이해의 폭을 좀더 넓힐 수 있다.
키워드
- 제목
- 헤겔의 슐레겔 비판
- 제목 (타언어)
- G.W.F. Hegel's Critique of F. Schlegel
- 저자
- 서정혁
- 발행일
- 2012-11
- 저널명
- 철학
- 권
- 113
- 페이지
- 67 ~ 9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