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간도 자치 시도와 그 한계에 관한 연구 - 기독교와 유교 세력의 갈등 양상을 중심으로
A Study on the Religious-Political Articulation of North Gando Self-governm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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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이 연구의 목적은 북간도 민족운동 발전사에서 중요한 단계였던 간민회의 자치 시도가 실패한 원인을 탐구하는 데 있다. 1913년 간민회 창립은 독립협회와 만민공동회를 기원으로 하는 시민 정치 세력이 신민회를 매개로 북간도 지역에서 민족자치를 실행했다는 점에서 특별한 위상을 갖는다. 간민회 자치 실험은 북간도 이주민의 반발과 중국의 자치 반대 흐름에 따라 실패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이 연구에서는 간민회의 기독교 민족주의 급진파와 유림 의병 세력 사이의 갈등을 중심으로 새롭게 해석했다. 연구 결과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서간도 개척이 1910년 국망 전후 신민회와 혁신 유림의 독립운동 기지 건설 계획에 따른 체계적 집단 이주로 진행된 것과 달리, 북간도 개척은 국내 민족운동 세력의 망명 훨씬 전인 1860년대부터 도강 농민에 의해 자연발생적으로 시작되었다. 이미 경제적 자립 역량을 충분히 갖춘 북간도 이주민 사회를 장악하기 위해 경쟁하던 다양한 운동 세력 사이에 갈등은 불가피했다. 둘째, 신해혁명과 이어지는 중국의 정치변동은 중앙 및 지방정부와의 우호적 관계를 통한 한민족의 자치에 대한 기대를 높였지만, 동시에 혁명파와 보수파 사이를 오가는 중국 중앙 권력의 향배와 지방정부의 선호에 따라 북간도 민족운동 세력 사이의 갈등이 생성되는 상황에 처하게 되었다. 셋째, 북간도의 특수한 정세에서 간민회와 사우계(/공교회) 두 집단의 종교-정치 접합의 성격 차이가 북간도 자치 실패의 직접적인 요인으로 작용했다. 촉발 요인은 급진 기독교계 인사들의 권력 정치 행태에 대한 의병 유림의 불만이었지만, 이를 증폭시킨 것은 두 세력의 종교-정치 접합에서 종교적 절대성이 과도하게 현실 정치 해석과 실천을 지배한 데 있었다. 정치적 실천 방안을 둘러싼 작은 차이가 서로에게 절대적 악으로 인식되면서, 두 단체 사이의 대립과 갈등은 증폭될 수밖에 없었다.

키워드

북간도 자치간민회사우계공교회종교-정치 접합.North Gando Self-governmentGanminhoeSaugyeGonggyohoireligious-political articulation.
제목
북간도 자치 시도와 그 한계에 관한 연구 - 기독교와 유교 세력의 갈등 양상을 중심으로
제목 (타언어)
A Study on the Religious-Political Articulation of North Gando Self-government
저자
이황직
DOI
10.18399/actako.2024..95.006
발행일
2024-06
저널명
한국학논집
95
페이지
197 ~ 24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