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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특정한 공간 안에서 다양한 매체를 통해 과거 또는 다른 문화의 삶과 조우하게 하는 박물관은 우리가 역사와 접속하는 최상의 공간이라고 할 수 있다. 박물관 안에서 재현되는 역사는 우리가 갖고 있는 역사적 정보들을 지배하며 ‘진실’로 등극하기도 한다. 지배 이데올로기에 저항하는 개인의 이야기들이 박물관을 통해 대중과 소통하려는 경향을 보이는 것은 어느 매체보다 기억 정치에 유효한 박물관의 성격 때문이다. 정대협은 운동 초기부터 박물관 건립에 힘을 기울였다. 평화와 여성인권 관점에서 일본군‘위안부’의 역사를 쓰는 것이 정대협 운동의 중심 과제였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정대협은 박물관 건립의 필요성을 홍보했고 국내외를 넘어 광범위한 건립 기금 모금 운동을 버렸다. 그 과정에서 한국 및 일본 우익 세력들의 공격을 받기도 했고, 부지선정을 둘러싸고 독립운동 관련 단체와 갈등을 빚기도 했다. 2012년 5월 5일, 서울 마포 성미산 자락에서 전쟁과 여성인권 박물관이 문을 열었다. 정대협이 건립운동이 시작한지 9년 만이었다. 피해여성들이 기부한 돈이 씨앗돈이 되었고, 개방적이고 민주적인 절차를 거쳐 설계업자가 참여했다. 반면 기획과 작성 과정에 대한 공개 없이 정대협 사무국에서 일방적으로 전시콘텐츠 작성을 담당한 것은 아쉬운 점이다. 기억-추모-치유-기록으로 이어지는 박물관의 공간 구성은 서술적이다. 반면 전시콘텐츠는 ‘위안부’의 역사, 정대협 운동사, 오늘날 지구촌의 전쟁과 여성아동 폭력 문제 등 꽤 빽빽한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때문에 공간 구성의 의미를 충분히 살리지 못한 것은 정대협의 과제로 남았다. 정대협이 전시관 곳곳에 전면적으로 배치한 것은 소녀의 이미지다. ‘위안부’ 피해여성이 겪은 삶의 경험을 순수한 소녀의 시절에만 정박시켜 놓음으로써 정대협이 얻거나 잃는 운동의 효과에 대해서는 그간 논쟁이 있어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계 평화와 여성인권을 위한 박물관의 공간 여기저기에 다시 소녀들을 소환한 것은 소녀 논쟁에 대한 정대협의 안일한 대답이다. 전쟁과 여성인권 박물관이 가시적 연대 활동과 정치사회적 운동을 넘어 피해자들의 치유의 공간이 될 뿐만 아니라 관람객들이 피해자들의 삶과 만나 진한 ‘울림’을 자아내는 공간이 되기 위해서는 좀더 치열하되 더욱 문화적인 공간으로 거듭나야 할 것 같다. 박물관을 운동의 거점으로 삼은 만큼 정대협의 운동 또한 문화적인 전환점을 맞을 때가 되었다.
키워드
- 제목
- 정대협 운동사의 현재를 담다 ―전쟁과 여성인권 박물관
- 제목 (타언어)
- A History of the Korean Council: War and Women’s Human Rights Museum
- 저자
- 박정애
- 발행일
- 2014-02
- 저널명
- 역사비평
- 호
- 106
- 페이지
- 229 ~ 26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