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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이 글은 일본의 한국지방 통치기구인 이사청이 통감부 정책의 흐름에 따른 관제 개정 속에서 그 조직 운영이 내부적으로 어떠한 변화를 밟아 가는지 밝히는 데 있다. 1905년 12월 21일 발포된 칙령 제267호 「統監府及理事廳官制」에 의해 이사청 이사관은 지방에서 한국의 외교 사무를 주관하면서 한국 지방관 시정에 대해 감독하고 충고할 수 있는 지위에 서도록 그 조직과 권한이 법규로 정해졌다. 이후 관제는 4번의 개정을 거치게 되는데, 통감 이토의 한국 통치구상 곧 통감부 정책의 전개 과정 속에서 진행되었다. 특히 1906년 개청 후부터 1907년 제3차 「한일협약」 무렵까지 진행된 1ㆍ2차 관제 개정과 관련 법률의 제정은 이사청의 職權 행사 범위를 더욱 확장시키는 방향으로 나아갔다. 반면 관제 3ㆍ4차 개정으로 1907년 9월에 이사청 경찰권이 축소되었고, 1909년 10월에는 이사청 사법권이 폐지되었다. 곧 1907년 제3차 「한일협약」이후 통감부의 한국 통치정책이 보호정치에서 식민지화로 방향 전환해 가는 시점에서, 이사청은 오히려 행정기관으로서의 역할만 남아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그 이면의 실상을 보면, 이사관은 ‘병합’이전인 1910년 7월 이사청 경찰사무가 중앙으로 완전히 넘어가기 전까지 재한 일본인의 경찰사무를 여전히 집행할 수 있었으며, 지청 부이사관 및 이사청 경찰 등의 관리들은 중앙의 통감부 산하에 흡수되어 한국 정권 인수 과정의 한복판에 서서 한국 내정을 장악해 가고 또 이에 따른 한국인의 저항을 탄압하는 데 일조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사청 조직 운영을 정원, 사무분장, 그리고 급여 등을 통해 살펴보면, 우선 이사청 정원은 통감부 정책의 흐름에 따라 변동하고 있었으며, 특히 주임관에 비해 판임ㆍ판임관 대우의 정원은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었다. 이사청의 사무 분장은 매우 자세하고 조밀하게 이루어져 있어서, 한국 지방을 통치하는데 유용하였다. 이는 곧 종래 일본영사관 사무를 그대로 인수하고, 외국 거류지와 관계되는 한국 정부 및 외국인 관련 등의 감리서 사무까지 흡수하여 관할지역 일대를 관장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사관의 연봉은 당시 시세를 비추어 보더라도 대단할 정도였다. 이사관과 부이사관을 지낸 인물들의 특징은 다음 세 가지 정도로 정리될 수 있다. 첫째 1906년 개청 초반에 임용된 이들은 종래 한국 각 지역 내 일본 영사관 출신들로서 한국 사정을 잘 아는 ‘한국통’이었다는 점이다. 둘째 이사관과 부이사관들은 ‘한일병합’ 이후 총독부 중앙의 각 부서에서부터 시작해 지방까지 두루 임용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셋째 이들은 총독부 산하에서 거의 대부분이 한국 지방의 부윤ㆍ도장관ㆍ도서기관ㆍ府사무관 등을 지내거나 한국 지방법원의 판사 혹은 검사가 된다. 곧 통감부에 이어 총독부 산하에서도 한국지방 통치를 주도하는 자리에 섰던 것이다. 이처럼 이사청은 관제 개정에 따라 내부적으로 그 구성원들의 임무와 성격, 그리고 조직의 운영에 변화를 겪으면서 통감부 정책을 전개해 나갔으며, ‘병합’이후 총독부 정책에까지 영향을 미쳤다.
키워드
- 제목
- 理事廳 직제와 운영
- 제목 (타언어)
- A Study on the Organization and Operation of Yisacheong
- 저자
- 한지헌
- 발행일
- 2015-05
- 저널명
- 역사학연구
- 호
- 58
- 페이지
- 147 ~ 19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