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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연구는 1905년 이후 국망과 도멸의 이중 위기에서 연해주로 망명한 류인석과 망명 유림이 의병 세력 확대를 위해 시행한 관일약을 통해서 보수 유림의 근대적 정치 관념 수용과 전환의 근거를 탐색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1908년 국내에서 의병 활동이 불가능해지면서 장기적인 저항을 위해 연해주로 이주한 이후 류인석은 유교적 공동체 형성을 위한 관일약을 결성해서 의병과 정착지 주민들의 자치와 항쟁을 도모했다. 이연구의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다. 첫째, 관일약은 연해주와 북만주의 이주민에게까지 입약 자격을 개방했는데, 이에 따라 기존 향약의 신분제적 성격을 극복했다. 둘째, 국내의 애국단체 결성을 통한 자강 모색과 연해주 구국 세력의 일심단체 결성에서 자극받아 관일약은 단체를 통한 근대적 의사 결집과 조직화 방식의 중요성을 긍정했다. 셋째, ‘애도에서 애국으로’의 전환에 따라 세력 확대 필요성을 자각하면서 보수 유림 등 기존 동조 세력 외에 만주와 연해주 이주민에게 문호를 개방하면서 근대적 애국단체 성격을 더욱 분명히 했다. 비록 관일약 자체는 확장성에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었지만, 관일약 시행 전후 류인석과 의병 유림의 변화와 통합 시도에 러시아 한인사회와 이범윤의 복국 세력, 미주 국민회연계 세력 등이 호응했다. 1910년 6월의 13도의군 편성과 8월 합병에 반대하는 성명회 선언에서 확인할 수 있는 류인석의 지도적 위치는 관일약 관련 활동에 이어져 있던 것이다. 이처럼, 류인석의 후기 사상은 구한말 항일과 보수를 겸해야 했던 유림 의병이 고난 끝에 도달하게 된 사회의식을 일관된 세계관으로 표현하고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대등한 사회관계를 전제로 맺어진 단체 활동으로서 관일약은 주민이 항일의 주체로 자각하게 하는 도덕적 정치적 계기를 제공했다. 따라서 류인석은 보수적인 유교 정치의 틀이라는 한계 내에서 시국의 변화에 대응한 운동 방식과 논리를 제시해서 훗날 식민지 시기 정통 유림이 근대적 민족운동에 결합할 수 있게 공헌했다고 평가할 수 있다.
키워드
- 제목
- 류인석의 연해주 의병에서 근대적 단체 관념 수용에 관한 연구: 관일약 관련 활동을 중심으로
- 제목 (타언어)
- Acceptance of Modern Political Ideas by Ryu In-seok and Gwanilyak
- 저자
- 이황직
- 발행일
- 2024-09
- 저널명
- 사회사상과 문화
- 권
- 27
- 호
- 3
- 페이지
- 39 ~ 7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