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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르완다의 종족갈등은 후투족과 투치족 남성간의 폭력만은 아니었다. 투치족 여성은 투치족이면서 아울러 여성이기 때문에 인종학살의 표적이 되었고, 인종학살의 영향을 가장 크게 받았다. 종족갈등의 주 희생자였던 여성은 갈등 이후 재건과정에서 화해와 재건의 중심세력이 되었다. 인종갈등의 희생자이며 목격자인 여성문제의 해결이 재건과정의 주요내용이 되어야 했다. 즉 재건과정에 젠더가 고려되지 않고는 재건의 의미가 무의미하며 불가능한 상황이 되었기 때문이다.종족갈등은 성평등 체제가 구축될 수 있었던 대내적인 계기가 되었다. ‘RPF (Rwanda Patriotic Front) 정권’과 ‘여성운동의 삼각 동맹’ 및 ‘국제사회의 규범’은 과도정부의 성평등 체제형성에 관여한 주요 행위자이다. 이 세 행위자의 이해관계에 의해 여성은 르완다 재건의 중심세력으로 부상할 수 있었으며, 보다 적극적으로 성평등 체제를 형성할 수 있었고, 그 결과 단기적으로 가장 신속하게 여성의 정치세력화를 이루어냈다. 르완다의 1994년 인종학살 이후 2003년 새 헌법이 채택되기까지의 과도기간을 성평등 체제의 재편 기회로 보고, 성평등 체제의 개편에 기여한 주요 행위자를 중심으로 성인지 헌법(gender sensitive constitution)과 성 할당제가 도입되어 성평등 체제가 구축되는 과정을 살펴보았다. 헌법상 할당제를 도입함으로써 2003년 최초의 의회선거에서 여성은 단 한번에 48.8%를 확보함으로써 여성의원비율 세계 1위를 기록하면서 양적인 성평등 체제를 구축하였다.
키워드
- 제목
- 르완다 종족갈등 이후의 성평등체제 구축과정
- 제목 (타언어)
- Progress toward gender equality in Rwanda after democratization
- 저자
- 유숙란
- 발행일
- 2006-05
- 저널명
- 아시아여성연구
- 권
- 45
- 호
- 1
- 페이지
- 295 ~ 33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