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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이 글에서는 영칙의례를 통해 태종∼세종대에 『세종실록』 오례 성립을 위한 의주 정비의 노력이 있었고, 미진한 부분을 보완한 『국조오례의』의 편찬으로 조선 국가의례가 완성되었다는 조선 초 예제 성립의 기존 인식에 대해 재검토하였다. 연구 결과 조선 초 거행된 영칙의례에는 다음과 같은 특징이 있었다. 첫째, 영칙의례는 편의적으로 거행되었다. 조선에서 영칙의례를 예제적으로 더욱 올바르고 치밀하게 정비하기 위해 꾸준한 노력을 계획적으로 진행한 흔적은 없었다. 의례 거행 당시의 상황이 일반적 기준에 적합하면 그대로 거행하였고, 그렇지 않다면 적합하지 않은 규정과 절차를 수정하였다. 둘째, 오례의에 편제된 「영칙서의」는 영칙의례 절차의 표준을 보여주는 지침이었을 뿐, 절대 불변의 완성형이 아니었다. 이들 의주는 의한 글자도 추가하거나 삭제하면 안 되는 것이 아니었고, 언제든 그 글자 그대로 의례를 행할 수 있을 만큼 예외적 상황까지 포괄하고 있는 것도 아니었다. 「영칙서의」는 의례 거행시에 변수가 발생한다면 그 상정 의도를 헤치지 않는 선에서 언제든 변용될 수 있었다. 조선은 분명히 고도로 세련된 의주로써 오례의를 편찬하였다. 다만 그 과정은 이미 계획되고 설정된 완성형에 도달하기 위해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의례 거행 때마다 전례를 고찰하고 수정하였던 순간순간을 수렴하는 진행형이었다.
키워드
영칙의례; 칙서; 세종실록 오례; 국조오례의; 국가의례; protocol of receiving Chikseo(迎勅儀禮); Chikseo(勅書); Five Rites of Sejong Chronicles(世宗實錄 五禮); National Five Rites(國朝五禮儀); national rites
- 제목
- 조선 초 迎勅儀禮의 성립과정과 그 특징
- 제목 (타언어)
- New Perspective on the Protocol of receiving Chikseo(勅書) in the early Joseon Dynasty
- 저자
- 윤승희
- 발행일
- 2022-02
- 저널명
- 역사문화연구
- 호
- 81
- 페이지
- 75 ~ 1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