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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 仇台廟의 성격과 부상 배경
초록
仇台는 중국 측 사서에서 백제의 시조로 언급되고 있다. 기왕에는 구태가 東明의 후예라는 중국 측의 부회로 인하여 구태와 동명을 별개로 파악하였으나, 당시 백제의 시조는 동명이었으므로 구태는 동명이다. 구태는 웃어른을 의미하는 优台가 와전된 표현이다. 따라서 仇台廟는 優台廟다. 우태묘는 도성 안에 위치하였을 뿐 아니라, 그 의미가 太廟와 통하기 때문에 宗廟와 다르지 않다. 구태묘 제사는 백제의 자체적인 절기에 맞추어 이루어졌다. 백제에서는 애초 무덤 중시 풍조가 자리하고 있었으나, 5세기 전반 이후 轉生思想의 확산과 자유혼 관념의 성행, 유교 문화에 대한 이해 증진, 대외적 위기의 지속으로 인하여 무덤의 입지가 동요되었다. 반대로 왕통의 흐름을 통하여 자신의 정통성을 확인하고 권위를 강화하려는 의도 속에 종묘에 대한 관심은 높아졌다. 그 결과 墓祭(東明廟 제사)가 침체되고 宗廟祭(구태묘 제사)가 대표적인 국가제사로 부상하게 되었다.
- 제목
- 백제 仇台廟의 성격과 부상 배경
- 저자
- 강진원
- 발행일
- 2019-02
- 저널명
- 동서인문학
- 호
- 56
- 페이지
- 127 ~ 162
- 언어
- KOR
- 출판사
- 계명대학교 인문과학연구소
- 발행국가
- 대한민국
- 분량
- 36 페이지
- ISSN
- P 173896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