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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이글에서는 景德王대 활동한 승려들, 그중에서도 경덕왕과 직․간접적으로 교류했던 승려들의 사례를 통해 당시 사회의 변화와 그에 따른 사상사적 변화의 의미를 살펴보고자 한다. 경덕왕이 승려들과 교류한 시기와 목적, 그리고 형태를 살펴보고 그 변화의 양상과 의미를 찾아보는 것이 이글의 목적이다. 경덕왕은 재위기간 동안 중대 다른 왕들보다 많은 승려와 교류했고, 횟수와 목적, 그리고 형태가 다양했다. 승려들과의 교류 사례는 경덕왕 13년(754) 이후로 눈에 띄게 증가하는데 이와 함께 재해와 관직교체가 빈번해지고 佛事도 늘어나고 있다는 점이 주목된다. 특히 재위 후반기로 갈수록 교류의 형태와 문제해결의 방법이 변화하고 있다는 점은 경덕왕대 사회변화와 궤를 함께 하고 있어서 흥미롭다. 경덕왕과 승려의 교류양상이 당시 사회의 정치와 사상경향의 상관관계를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되기 때문이다. 재위 전반기에 만난 승려인 眞表와 大賢, 그리고 法海의 경우 기존의 중대 사회에서 고승을 등용했던 모습과는 차이점을 보였다. 변화하는 사회에 참여하고 그에 따른 영향력을 펴고자 하는 방향에서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는 齋나 講說 등 공식적이고 의례적인 왕실 불교신앙의 형태는 여전히 유지되고 있었다. 반면 재위 13년 이후 만난 승려들과의 관계 속에서는 전혀 다른 형태가 나타난다. 새로운 승려를 찾고, 기존과는 다른 방법으로 문제를 해결하고자 했다. 表訓에게는 신이한 능력을 요구하여 후사문제를 해결했고, 중국의 도교 성지에서 천관보살신앙을 받아온 元表에게 法施하기도 했다. 또한 月明과 忠談을 만나 향가를 짓게 하여 사회문제를 해결하고자 했다. 이러한 경향은 경덕왕 재위 후반기로 갈수록 어려워지는 정치․사회적 상황과 불교의 대중화와 더불어 일어난 현상으로 보인다. 즉 점차 변화하는 사회에서 기존의 방법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것에 한계를 느낀 경덕왕은 문제해결과 사회 안정을 위해 불교신앙 뿐만 아니라 대중을 교화할 수 있는 여러 가지 방법과 그에 알맞은 승려를 이용해 사회의 안정과 통치에 힘을 얻고자 한 것이다.
키워드
- 제목
- 경덕왕과 승려의 교류양상과 그 의미
- 제목 (타언어)
- The exchange aspects and meanings of King Gyeongdeok and monk
- 저자
- 전보영
- 발행일
- 2013-12
- 저널명
- 사학연구
- 호
- 112
- 페이지
- 41 ~ 7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