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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시대 기신재(忌辰齋)의설행과 의미The Operation and the Meaning of The Gishin-jae(忌辰齋) in Goryeo Period

Other Titles
The Operation and the Meaning of The Gishin-jae(忌辰齋) in Goryeo Period
Authors
라정숙
Issue Date
Aug-2014
Publisher
한국사상사학회
Keywords
Gishin-jae; Memory ceremony of the deathday; Filial devotion; rite of Buddhism; rite to pass away peacefully; 기신재(忌辰齋); 추선의례(追善儀禮); 효(孝); 불교식 제례(祭禮); 천도재(遷度齋)
Citation
한국사상사학, no.47, pp 137 - 170
Pages
34
Journal Title
한국사상사학
Number
47
Start Page
137
End Page
170
URI
https://scholarworks.sookmyung.ac.kr/handle/2020.sw.sookmyung/52026
ISSN
1226-9441
Abstract
기신재란 불교식 제례로써 가장 널리 행해진 추선의례인데 고려시대에는 다양한 용어들로 불리면서 점차 확산 정착되어 갔다. 중국에서는 특히 천태종과 조계종의 승려들에게서 기신재나 기일상당·법회 등이 설행되고 있는 것을 보여준다. 그러나 중국 정사에서는 왕실이나 관료들의 기신재 설행 모습이 잘 보이지 않고, 불교 쪽 자료에서 당나라 때부터 제사의례로 자리 잡아 갔으며 송나라 때에도 사찰에 가서 행하거나 승려를 불러 열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우리나라의 기신재(忌辰齋) 관련 기록에서 가장 앞서는 것은 고려 성종(成宗)대로 알려져 왔다. 그러나 『삼국유사(三國遺事)』 등을 살펴보면 이미 신라시대부터 사찰에서 기신재를 설행해 오고 있다. 고려 성종대 설행된 기신재는 분수(焚修), 기월(忌月), 철조(輟朝) 등 당나라부터 시작된 기신재의 설행 양상과 비슷한 모습을 보인다. 그러나 성종 이후 봉선고를 설치하여 비용을 안정적으로 조달하거나 관료들의 상표위무(上表慰撫), 식찬공헌(食饌供獻)과 반승(飯僧) 등의 의례형식은 고려왕실만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관료들의 경우 고려전기에는 기록이 미비하지만 최항의 경우 국가에서 기신재 비용을 대주는 등의 기록이 실려 있어서 일찍부터 기신재가 설행되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한편 『목은집』에 의하면 인척(姻戚), 좌주, 친우 등의 기신재에 참석하는 다양한 기록들을 남기고 있다. 가묘(家廟)의 제도보다 향속(鄕俗)으로 인식되고 설행되었던 모습을 잘 나타낸다. 반면 고려시대의 불교계 특히 선종에서는 특별한 기록이 전하지 않아 중국과 대조된다고 하겠다. 고려시대는 왕실과 유학자 관료들도 기신재 설행을 효의 실천이라고 생각했던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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