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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 후 북한 기록영화와 정치선전North Korean Documentary Films and Propaganda after Liberation

Other Titles
North Korean Documentary Films and Propaganda after Liberation
Authors
양정심김은경
Issue Date
2016
Publisher
역사학연구소
Keywords
기록영화; 영상자료; 영상역사; 노획영상; 북한; 정치선전; 이미지 선전; Documentary Film; Visual Record; Visual History; Seized Documentary Film; North Korea; Propaganda; Image Propaganda
Citation
역사연구, no.31, pp.135 - 167
Journal Title
역사연구
Number
31
Start Page
135
End Page
167
URI
https://scholarworks.sookmyung.ac.kr/handle/2020.sw.sookmyung/10000
ISSN
1229-1714
Abstract
본 연구는 북한 노획 영상을 통해 해방 이후 한국전쟁 전까지 북한의 사회상과정치선전 전략을 분석했다. 연구에서 주목한 부분은 영상을 제작한 주체의 의도와 텍스트가 유포하는 담론이다. 연구 내용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남한에서 미군정이 미공보원을 통해 정치선전을 했던 것처럼, 초기 북한의 기록영화 제작에서 소련의 역할과 비중이 매우 컸다. 소련은 자국에서 생산한기록영화를 북한에서 상영하기 위해 우리말 내레이션을 삽입하는 등 북한에서사회주의 정치선전을 하는데 힘을 쏟았다. 정치선전의 장이 되었던 기록영화는북한에서 소련의 문화적 헤게모니가 관철되는데 큰 역할을 했다. 둘째, 초기 북한 기록영화는 북한정권의 정당성과 사회주의의 우월함을 선전하는데 집중했다. 북한은 ‘민주개혁’과 사회주의를 표방했기 때문에 기록영화의 주요 선전 주제는 토지개혁과 공장의 생산성 증가, 그리고 농민, 노동자, 여성, 청년등 하층 대중의 삶을 조명하는 것이었다. 또 선거와 교육을 계몽하는데 많은 분량을 할애했고, 분단이 현실화되던 시점에서는 남북연석회의를 집중 조명하기도했다. 셋째, 북한 기록영화의 영상 스타일은, 계몽과 선전을 위해 사운드를 많이 활용했다는 특징이 있다. 북한 기록영화는 이미지보다 사운드를 우위에 두어 전지적인 ‘신의 목소리’를 통해 대중을 계몽하려 했다. 이는 문맹인구가 많은 상황에서북한의 정책과 이데올로기를 선전하는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한 것이었다. 넷째, 기록영화는 김일성을 비롯한 북한 정권과 소련의 정책을 일반 대중에게선전하고 보다 쉽게 다가갈 수 있는 설득의 매개체였다. 문맹인구가 많았던 북한대중은 영화를 통해 새로운 정치체제와 이데올로기를 내면화했다. 북한의 개혁이실제 생활양식과 삶의 방식을 바꾸었다면, 영화는 개혁의 정치적 의미를 각인시켰다. 기록영화의 관람은 오락과 정치 학습을 오가는 시간이었다. 그런 점에서 해방후 북한의 기록영화는 새로운 체제에 동의하는 대중-인민을 형성하는데 기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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