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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세기 신라 화엄의 추이The trend of Hwaeom thought in 9thct. Silla

Other Titles
The trend of Hwaeom thought in 9thct. Silla
Authors
정병삼
Issue Date
Dec-2014
Publisher
동국대학교 불교문화연구원
Keywords
Buseoksa; Beopyung; Beopgyedogi; Hwaeomsa; Yeonggwan; Haeinsa; Hyeonjun; Choi Chiwon; 부석사; 법융; 법계도기; 화엄사; 영관; 해인사; 현준; 최치원
Citation
불교학보, no.69, pp 119 - 143
Pages
25
Journal Title
불교학보
Number
69
Start Page
119
End Page
143
URI
https://scholarworks.sookmyung.ac.kr/handle/2020.sw.sookmyung/11053
ISSN
1226-1386
Abstract
의상이 정립한 신라 화엄학은 8세기에 들어 다양한 경향을 보이기 시작하였다. 부석사에서는 신림(神琳)을 중심으로 의상의 사상을 계승하는 교학 활동이 활발하였고 화엄사에서는 8세기 중반에 연기(緣起)가 화엄과 기신을 융합하는 사상 경향을 드러냈다. 이밖에도 황룡사 등에서 다양한 화엄승의 활동이 이루어졌다. 9세기에 부석사계에서는 법융(法融) 진수(眞秀) 대운(大雲) 등 신림의 제자들이 『법기(法記)』, 『진기(眞記)』, 『대기(大記)』 등 『일승법계도』에 대한 주석서를 나란히 저술하여 각기 다소 다른 화엄사상을 전개하였고, 법융 이후에는 법융의 『십구장(十句章)』에 대한 주석서 찬술이 유행하였다. 법융이나 진수는 의상을 비롯하여 지엄과 법장 등 초기 화엄학에 의거하는 경향이 강하지만, 대운은 이들과 함께 80화엄과 징관의 해석을 동시에 활용하며 자유로운 해석을 베푼 차이를 보였다. 화엄사에서는 영관(靈觀)이 연기와 같이 의상계와 법장계의 사상을 아울러 수용하는 사상 경향을 보였다. 영관의 저술도 『일승법계도』에 대한 주석서일 가능성이 있다. 9세기 초반에 해인사를 발전시킨 순응과 이정은 선수행 경험을 가졌으며, 9세기 말에 현준(賢俊) 등은 화엄 관련 결사를 결성하여 화엄조사들을 추모하고 왕실의 평안을 기원하였다. 이 시기 해인사에 머물던 최치원(崔致遠)은 해인사에서 90일 좌선 등의 선수행이 이루어졌음을 글로 남겼다. 선종의 성행에 대응하여 화엄에서는 조사를 추모하며 교단의 응집력을 강화하는 한편 선수행에도 관심을 가짐으로써 신라말 불교계의 새로운 흐름을 모색하려 했다. 이와 같은 활동과 지향의 결과 9세기 말 이후의 신라 화엄은 해인사를 중심으로 전개되었고, 후삼국기에 북악과 남악으로 불리는 화엄의 다른 경향이 해인사에 공존하는 현상까지 이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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