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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석집첩』 수록 17~18세기 普賢寺 僧碑와 불교계 승비 건립의 변화Buddhist memorial stones of Bohyeonsa in GeumseokJipcheop and the change of making Buddhist memorials in 17th~18th century

Other Titles
Buddhist memorial stones of Bohyeonsa in GeumseokJipcheop and the change of making Buddhist memorials in 17th~18th century
Authors
정병삼
Issue Date
Aug-2023
Publisher
고려대학교 민족문화연구원
Keywords
금석집첩; 승비(僧碑); 보현사(普賢寺); 대흥사(大興寺); 편양파(鞭羊派); 월저도안(月渚道安).; eumseokJipcheop; Buddhist memorial stones; Bohyeonsa; Daeheungsa; Pyeonyang branch; Weoljeo Doan.
Citation
민족문화연구, no.100, pp 45 - 88
Pages
44
Journal Title
민족문화연구
Number
100
Start Page
45
End Page
88
URI
https://scholarworks.sookmyung.ac.kr/handle/2020.sw.sookmyung/151612
DOI
10.17948/kcs.2023..100.45
ISSN
1229-7925
2672-0787
Abstract
『金石集帖』 226책 중에 현재 전하고 있는 것은 220책이다. 『금석집첩』에 수록된 101종의 불교 자료 중 현재 전하는 것은 88종이다. 『금석집첩』을 통해 새롭게 알려진 불교자료는 모두 10종이며, 이밖에 11종은 탁본 자료로서 처음 알려진 것들이다. 88종의 불교 자료 중에 절반에 가까운 41종이 35인의 승려들의 생애를 기록한 僧碑이다. 17세기부터 『금석집첩』이 1차 제작될 무렵인 1760년까지 건립된 승비는 90기인데, 이들 중 普賢寺에 건립된 것이 17기이고, 13기가 白華庵 楡岾寺 乾鳳寺 등 금강산 사찰에 건립되었다. 남쪽 사찰로는 大興寺에 7기, 美黃寺에 2기가 건립되었다. 이들 사찰에 건립된 39기의 승비는 이 시기에 보현사와 대흥사가 불교계 활동의 중심에 서 있었음을 말해 준다. 90기의 승비 중에 『금석집첩 에 채집 수록된 것은 41기이다. 이들은 모두 해당 승려의 僧系를 찾을 수 있을 만큼 두드러진 활동을 보인 승려들의 생애를 담고 있다. 41기 중 보현사의 승비가 15기로서 절대적으로 많고, 유점사와 백화암에 각 4기, 건봉사와 深源寺에 각 2기 등 금강산 일대의 사찰을 중심으로 강원도에 12기가 건립되었다. 경기도는 2기, 경상도는 表忠祠 2기 등 5기이고, 전라도는 3기, 황해도와 함경도는 각 2기이다. 41기의 승비는 浮休系 3기를 제외하고 모두 淸虛系 승려들의 비문이다. 『금석집첩』 수록 승비를 통해 청허계 중에서 四溟派가 금강산을 중심으로 지속적으로 法脈을 계승하며 활동하였음을 알 수 있다. 靜觀派는 여러 지역으로 분산되어 활동하였고, 逍遙派는 대흥사에서 강학을 주도하는 한 흐름을 이루었음을 보여 준다. 鞭羊派는 18기나 되는 가장 많은 자료가 수록되었는데, 같은 편양파 중에서도 계열에 따라 다른 활동 무대를 가졌음을 승비들은 보여주고 있다. 편양-楓潭義諶-月渚道安-雪巖秋鵬을 계승하는 문도들은 보현사에서 대를 이어 활동하며 다른 어떤 계파보다 중추적인 위상을 확립하였다. 풍담-월저-설암은 보현사와 대흥사를 모두 근거로 삼아 활동을 펼쳤다. 이들 월저 계열이 풍담-月潭雪霽-喚醒志安-虎巖體淨-蓮潭有一로 계승되는 법맥과 함께 대흥사를 불교계 제일의 講學 도량으로 이끌었으며, 여기에 소요파의 醉如三愚-華岳文信-雪峰懷淨 계열이 합세하여 대둔사가 18세기 후반 불교계의 중심을 이루었음을 『금석집첩』의 비문이 확인해 준다. 이처럼 『금석집첩』에 수록된 승비 자료는 17~18세기 불교계의 변화 추이를 여실하게 보여주는 불교사적 의의를 갖는다. 특히 편양파 승려들이 보현사와 대흥사에서 중첩되는 활동을 보이다가 점차 대흥사 중심의 면모를 보이는 것을 『금석집첩 의 비문은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그 자료적 의의가 크다. 『금석집첩』을 통해 처음으로 소개되는 승비 자료는 승비 제작의 추이를 보여준다는 의미도 갖는다. 18세기에 건립된 雪巖秋鵬⋅雲坡義俊⋅碧虛圓照⋅天然智圓의 4인의 비문이 이를 대표한다. 설암의 비는 4기나 건립되었지만 『금석집첩』에 수록된 보현사비(1708년)가 가장 상세한 내용을 담고 있는 중요한 자료이다. 운파의 비(1728년)는 편양파에 속하지만 풍담과 다른 계열인 운파의 생애를 소략하게 기록한 간단한 비문이다. 벽허의 비(1746년)는 대사의 행적 자체에 대한 부분은 매우 소략한 내용이다. 이는 보현사 승려들의 활동이 불교계에서 점차 위축되던 분위기를 반영한다. 천연의 비(1753년) 또한 소략하다. 다만 천연의 비문을 통해 보현사에서 설암 계열이 세 사람이나 활동하며 종풍을 계승한 면모를 확인할 수 있는 의미가 있다. 이처럼 18세기 보현사의 새로 소개된 승비들은 비문의 내용이 점차 소략해지고 활동상을 구체적으로 알기 어렵게 되는 상황을 잘 보여주고 있다. 무엇보다 『금석집첩』에 수록된 승비들은 17~18세기 불교계의 변화 추이를 일목요연하게 그대로 보여준다는 불교사적 의의를 갖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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