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 시에 나타난 은유로서의 정치

Abstract

식민지 시대 문학은 지배계층의 검열과 식민화로 인하여 재현할 수 없는 현실의 모습을 은유를 사용하여 표현하고 전달했다. 이때 텍스트를 구성하는 은유는 지배적 표상체계에서 벗어난 무의식의 영역을 표현하고 있다는 점에서 전복성을 지닌다. 본고는 이상의 텍스트에서 시간과 공간을 지시하는 표현들이 독자들에게 인식되고 재구성되는 과정에서 그 당시에 입으로 말할 수 없었던 현실의 모습, 시적 주체의 무의식의 영역을 드러내고 있다고 가정하였다. 이상의 문학을 역사ㆍ정치적인 관점에서 독해하려는 선행 연구들의 흐름 위에서 그의 작품에 암시적으로 표현된 시공간의 크로노토프를 구체적인 역사ㆍ정치적인 상황 속에서 탐색하여 식민지라는 특수한 시기를 살아갔던 당대인의 체험적 반응과 식민지 근대ㆍ반근대의 양가적 인식의 모습을 보여주는 이상의 세계관을 확인하고자 한 것이다. 이상 텍스트의 시적 주체는 근대적 시간에 대하여 거부, 불신의 태도를 자주 드러내 보인다. 본고는 시간을 구현하는 은유적 크로노토프를 시적 주체의 정치적 의식을 살펴볼 수 있는 내면에 접근할 수 있는 통로로 보았다. 또한 이상 텍스트에 자주 나타나는 수식, 과학기술 용어, 기하학적 도형을 연상시키는 시구들이 문학적 작업이 이뤄지는 과정에서 시공간적 의미를 획득해가는 것을 통해 이것이 당시에 재현할 수 없는 정치적 상황까지도 암시할 수 있음을 보이고자 하였다. 이상 텍스트 시공간의 크로노토프가 암시적인 이유는 그것이 실제적이지 않아서가 아니라 식민지에서 허용되는 표상을 사용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상 텍스트에 나타난 시공간의 크로노토프를 탐색하는 것은 시적주체의 체제에 동화되지 않은 ‘무의식적 비동일성’, ‘잉여’ 부분에 대한 인식을 불러일으킨다는 점에서는 저항적일 수 있으나 이것이 식민주의의 극복과는 무관한 양가적 반응이라는 점에서 은유로서의 정치를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