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tailed Information

Cited 0 time in webofscience Cited 0 time in scopus
Metadata Downloads

고구려 祭天大會의 성립 시기와 그 추이The Foundation and Development of the Grand Harvest Ritual in Goguryeo

Other Titles
The Foundation and Development of the Grand Harvest Ritual in Goguryeo
Authors
강진원
Issue Date
Mar-2014
Publisher
국학연구원
Citation
동방학지, no.165, pp 1 - 32
Pages
32
Journal Title
동방학지
Number
165
Start Page
1
End Page
32
URI
https://scholarworks.sookmyung.ac.kr/handle/2020.sw.sookmyung/159317
DOI
10.17788/dbhc.2014..165.001
ISSN
12266728
Abstract
國都 동쪽에서 이루어지는 제천의례는 國中大會로 이루어졌는데, 그 이름을 東盟이라 한 것에서도 나타나듯 군주와 지배집단 간의 회합적인 성격이 내재해 있었다. 이때 이루어졌다는 公會는 별도의 모임이 아니라 국중대회 그 자체를 가리킨다. 제의 과정을 보면 隧神 혹은 穟神으로 지칭되는 始祖母가 日光感應으로 주몽을 낳았다는 전승을 재연한 것이다. 고대 한국에서는 시조에 대한 제사가 곧 제천이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이러한 祭天大會 동맹은 일정 정도의 왕권이 확립하였으나 아직 여타 지배집단의 힘도 온존하고 있던 시기에 거국적으로 시작되었다. 특정 시점을 잡아보자면 始祖廟 親祀가 이루어지는 등 주몽에 대한 의식이 강화되고 國相制가 실시된 신대왕대 이후일 가능성이 높다. 이때의 제천대회는 집권력에 한계가 있던 상황에서 의례를 통해 왕권의 정당성을 보장받고 통합을 도모하는 데에 역할을 하였다. 그런데 4세기 이후 제천대회의 양상에는 변화가 나타난다. 東盟이란 명칭이 사라진 것이다. 이는 집권력이 강화됨에 따라 종래처럼 대규모 회합을 통하여 정당성을 인정받거나 충성을 요구할 필요가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단 지배층 일반이 참여하는 국가제사로서의 성격은 그대로 유지되었다. 7세기 이후에는 제천의례를 할 때에 靈星神․日神․箕子神․可汗神 등을 함께 제사지내기에 이른다. 이는 수당 통일제국과의 긴장관계 등 어려운 국면에 처해 있던 고구려 측에서 난국을 타개하기 위해 마련한 방편이었다. 농경의 풍요를 빌고 다양한 집단을 포섭하면서 위기에 대처하려던 것이다. 비록 실권은 강고하지 않았으나 종교적 권위를 유지하였기에 그것을 통해 여러 신에 대한 제사를 주몽 아래 둠으로써 자신의 입지를 확고히 하려던 고구려왕과, 군주의 권위에서 나오는 구심력을 통하여 어려움을 무마시키고자 한 귀족세력의 이해가 합치하였기에 나타난 결과였다. 제천의례 자체가 왕과 혈연적으로 연결되는 시조를 섬기는 국가제사였으므로, 제천대회는 왕권과 불가분의 관계를 가지며 그 모습을 변모해갔다 하겠다.
Files in This Item
Go to Link
Appears in
Collections
문과대학 > 역사문화학과 > 1. Journal Articles

qrcode

Items in ScholarWorks are protected by copyright, with all rights reserved, unless otherwise indicated.

Related Researcher

Researcher Kang, Jin won photo

Kang, Jin won
문과대학 (역사문화학과)
Read more

Altmetrics

Total Views & Downloads

BROWS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