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려 석비문화의 전개와 변천 -비형(碑形)을 중심으로-

Abstract

고구려에 석비문화가 본격적으로 전개된 것은 3세기 중엽 조위의 침공 이후이다. 당시 왕권은 집권력이 강화되어가는 과정에서 자신들의 입장을 보여줄 선전물의 필요성이 증대되었고, 그에 따라 중국의 석비문화를 수용하였다. 그런데 위진시기 이후 중국의 석비문화가 위축되었음에 비해, 고구려에서는 그러한 모습이 나타나지 않았다. 중국처럼 금비령을 내릴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후한~위진시기에 성행하였던 규형비가 당시 고구려 석비의 기본 형태였다. 이후 5세기 초 석주형비가 고구려 석비의 전형으로 등장한다. 광개토왕비와 같은 거석을 종래의 규형비 양식으로 가공하기에 어려움이 있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결국 왕권은 경내에 존재하던 선돌과 같은 석주형 입석들을 참조하여 석주형비를 창출해 냈다. 물론 일반 지배계층에서는 변화가 급속히 진행되지 않았다. 그러나 시일이 흐를수록 석주형비는 대세를 점해 갔다. 요컨대 고구려 왕권은 자신들의 필요에 의해 석비문화를 수용하였고, 또 운용 면에서도 중국의 양상을 그대로 따르지 않았다. 석비문화 전개 과정을 통하여 고구려 문화의 주체적 면모를 확인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