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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의 상징으로서 근현대 일본의 연호와 시호

Authors
박완
Issue Date
Feb-2024
Publisher
일본연구소
Keywords
연호; 시호; 일세일원제; 일원일호제; 황실전범; 등극령; 황실상의령; 원호법; 메이지 천황; 이토 히로부미
Citation
일본비평, no.30, pp 14 - 49
Pages
36
Journal Title
일본비평
Number
30
Start Page
14
End Page
49
URI
https://scholarworks.sookmyung.ac.kr/handle/2020.sw.sookmyung/159854
DOI
10.29154/ILBI.2024.30.14
ISSN
2092-6863
Abstract
본고는 일본에서 시대를 구분하고 기억하는 상징으로서 근현대 천황제에 수반된 연호와 시호에 주목하여 이와 관련된 제도와 관행의 성립 과정, 새로운 전통이 출현한 것에 대한 국민들의 반응과 참여 욕구, 패전과 민주화가 연호와 시호에 초래한 위기와 국민 참여 문제를 포함하는 논의를 거쳐 새로운 제도로 변용하여 오늘날까지 생존하는 과정을 고찰했다. 근대 최초의 천황인 메이지 천황의 즉위 및 개원 이후 일세일원제, 연호 심의 절차 간소화, 천황위 계승 후 개원, 생전 퇴위 금지 등 연호에 관한 새로운 관행이 차례로 등장했다. 그리고 이는 이토 히로부미의 주도하에 40년이 넘는 장기간에 걸쳐 황실전범 및 등극령 제정으로 제도화되었다. 다만 황실상의령은 메이지 천황의 생전에는 끝내 재가되지 못하면서 시호는 제도화되는 데 이르지 못했다. 다음으로 국민들은 아직 제도화되지 않았고 결정까지 시간적 여유가 있는 시호 결정 과정에 관심을 가지고 참여하고자 했다. 또한 천황이 생전에 사용한 연호를 시호로 사용하는 새로운 관행의 출현에 당황하기도 했다. 하지만 일본을 ‘일등국’이자 제국으로 만든 메이지 천황이 일생 동안 사용한 연호를 시호로 택했다는 점에서 국민들은 이를 수용했다. 그 결과 일세일원제와 일원일호제가 결합하고 천황이 교대될 때마다 반복되었으며, 또 황실상의령이 제정되면서 시호도 제도화되었다. 한편 패전과 점령, 민주화를 계기로 황실전범, 등극령, 황실상의령이 개정・폐지되고 연호 폐지론이나 국민 공모론 등이 등장하면서 연호와 시호는 위기에 직면했다. 이에 정부는 원호법이라는 새로운 법적 근거를 부여하여 내각 주도의 연호 선정을 규정하고 종신 재위 및 일세일원제를 부활시켰으며, 또 시호 문제에서도 국회 측의 관여를 배제했다. 그리고 전후 최초의 천황 교대에서는 전전의 일세일원제와 일원일호제를 재확인했고, 최근에 있었던 천황의 생전퇴위 및 상황 호칭 부활도 예외적인 조치로 간주했다. 이처럼 시대의 상징으로서 연호와 시호의 지위는 전전과 전후를 거쳐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이것이 역으로 천황제의 생존에도 기여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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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k, Wan
문과대학 (일본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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