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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차 세계대전 전후 일본 육군의 재외무관 파견과 정보 수집The Japanese Army's dispatch of military officers abroad and intelligence during and after the First World War

Other Titles
The Japanese Army's dispatch of military officers abroad and intelligence during and after the First World War
Authors
박완
Issue Date
May-2023
Publisher
역사연구소
Keywords
제1차 세계대전; 일본 육군; 정보 수집; 삼국 협상(연합국); 다나카 기이치
Citation
史叢(사총), no.109, pp 37 - 77
Pages
41
Journal Title
史叢(사총)
Number
109
Start Page
37
End Page
77
URI
https://scholarworks.sookmyung.ac.kr/handle/2020.sw.sookmyung/159863
DOI
10.16957/sa..109.202305.37
ISSN
1229-4446
2671-583X
Abstract
본고는 제1차 세계대전 발발부터 종전 후에 걸쳐 일본 육군이 재외무관을 파견하여 행한 정보 수집 활동과 이에 대한 연합국의 반응을 고찰한 것이다. 육군은 1차대전 발발 직후에는 무관 파견에 소극적이었다. 하지만 1915년부터 매년 다수의 무관을 파견하였고, 1919년에 가장 많은 무관을 파견하는 등 종전 후 정보 수집 활동은 더 활발해졌다. 재외무관의 주요 파견국은 프랑스와 영국이었고, 포병・공병 장교, 각부 장교 상당관 및 기사 등을 파견하여 다양한 정보를 획득하였다. 그리고 미국에도 1918년과 1921년에 다수의 무관을 파견하였다. 또한 육군은 ‘적국’ 독일 정보 수집도 중시하였다. 이를 위해 전쟁 중에 독일과 인접한 중립국에 무관을 파견하였고, 당사국의 반발을 피하기 위해 무관 신분을 숨기거나 사전 통고를 하지 않는 등 편법도 구사하였다. 그리고 휴전 성립 직후부터 중립국 주재 공사관 소속 무관을 통하여 독일 측에 무관 파견 재개 가능성을 타진하였고, 강화가 성립하자마자 독일의 군사 공업 기술을 조사하기 위해 대규모 조사단을 파견하였다. 한편 연합국은 일본 재외무관에게 국내 군사 시설이나 전선 시찰을 허용하지 않는 등, 종군무관보다 더 엄격하게 자국 내 정보 수집 활동을 제한하였다. 특히 독일 정보를 얻기 위해 중립국에 무관 파견을 강행한 것은 영국을 비롯한 연합국의 반발을 초래하였다. 그리고 강화가 성립하여 전쟁이 공식적으로 종결한 뒤에도, 일본은 연합국의 대독 감정을 고려하여 한동안 독일에 직접 무관을 파견하지 못하였다. 연합국의 이러한 반응의 배경에는 연합국과의 공동 작전에 매우 소극적이었던 일본에 대한 불만과 일본과 독일의 접근설 등이 존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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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k, Wan
문과대학 (일본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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