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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0년 전후의 『교육시론(教育時論)』에 나타난 일본인의 ‘조선 및 한국교육’ 인식The Japanese Understanding of Korean Education in the KyōuikuJiron(敎育時論) published before and after 1910

Other Titles
The Japanese Understanding of Korean Education in the KyōuikuJiron(敎育時論) published before and after 1910
Authors
이명실
Issue Date
Feb-2019
Publisher
한국일본교육학회
Keywords
교육시론; 교육잡지; 교육인식; 서당; 사립학교; 유학생; KyōuikuJiron; Educational magazine; Japanese understanding; Seodang; Private school; Student studying abroad; 教育時論; 教育雑誌; 教育認識; 書堂; 私立学校; 留学生
Citation
한국일본교육학연구, v.23, no.3, pp 21 - 40
Pages
20
Journal Title
한국일본교육학연구
Volume
23
Number
3
Start Page
21
End Page
40
URI
https://scholarworks.sookmyung.ac.kr/handle/2020.sw.sookmyung/3811
ISSN
1229-8581
Abstract
본 논문에서는 1904년부터 1914년까지 일본에서 발행되었던 『교육시론』을 중심으로 거기에 나타난 일본인의 ‘조선 및 한국교육’ 인식을 고찰해 보았다. 이 시기는 제1-3차에 걸친 한일협약이 체결되어 한국의 재정․외교․교육의 권한이 일본의 간섭 아래 들어갔고, 1910년 일본의 강제병합으로 한국의 주권이 침탈되었던 때였다. 이러한 사회․정치적 변화의 시기에 『교육시론』이 일본의 독자들에게 전달하려 했던 ‘조선 및 한국교육’의 이미지는 어떤 것이었을까? 첫째, 필진들의 ‘한국인 및 한국문화’에 대한 서술은 혐오에 가까운 비하적 표현에서 한국인의 교육가능성을 인정했던 글까지 다양했다. 둘째, 한국의 교육기관으로 서당은 구태나 구습의 이미지로, 사립학교는 종교계 학교에 주목해 서술되었다. 그런데 이들 학교에 대한 조치는 양적규모나 외국과의 국제적 관계 때문에 적극적으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셋째, 유학생 수의 증가로 유학생에 대한 인식은 ‘활용’을 강조하는 논조에서 ‘단속’과 ‘규제’를 강조하는 논조로 변화되었다. 이 시기 『교육시론』에 나타난 ‘조선 및 한국교육’에 대한 글은 한일병합 전과 후, 그리고 필진의 한국교육경험에 따라 영향을 받았지만 그 의도가 한국 지배의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한 것이었다는 점은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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