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法泉寺 智光國師玄妙塔과 塔碑 硏究The Study of Stupa of State Preceptor Jigwang at Beopcheonsa Temple Site

Other Titles
The Study of Stupa of State Preceptor Jigwang at Beopcheonsa Temple Site
Authors
홍대한
Issue Date
Feb-2015
Publisher
한양대학교 동아시아문화연구소
Keywords
법천사(法泉寺); 지광국사현묘탑(智光國師玄妙塔); 법상종; 해린; 소현; 이자연; Beopcheonsa Temple(法泉寺); Stupa of State Preceptor Jigwang; East Asian Yogācāra; Haerin(海麟; Buddhist Monk); Sohyun(韶顯; Buddhist Monk); Lee Jayeon(李子淵; Koryo Dynasty politicians)
Citation
동아시아문화연구, no.60, pp 73 - 106
Pages
34
Journal Title
동아시아문화연구
Number
60
Start Page
73
End Page
106
URI
https://scholarworks.sookmyung.ac.kr/handle/2020.sw.sookmyung/51891
DOI
10.16959/jeachy..60.201502.73
ISSN
2383-6180
Abstract
法泉寺 智光國師玄妙塔(이하 현묘탑)은 고려 중기 활동한 法相宗 승려 智光國師 海麟의 僧塔이다. 법천사가 위치한 원주시 부론면은 강원도와 경기도, 충주지역이 남한강 수계를 경계로 인접한 곳이다. 법천사의 초창 시기를 알 순 없지만 928년 釋超가 賢眷律師로부터 구족계를 받았다는 기록을 통해 통일신라 이전 창건을 추정할 수 있다. 법천사지는 1938년부터 최근까지 수차의 발굴을 통해 사지 최북단에 2층 기단을 축조하고 3동의 건물을 品자형태로 배치 후, 중앙부 공간에 동서로 마주보는 위치에 인접하게 현묘탑과 탑비를 건립했음이 확인되었다. 이러한 배치구조는 고려 초 僧塔院을 구성하기 위한 특수한 평면계획으로 영통사와 삼천사에서도 사용되었다. 법천사 지광국사현묘탑은 팔각원당형 승탑의 구조를 탈피해 방형으로 건립됨으로써 석탑지향 의지를 보여준다. 현묘탑 건립 이전까지 승탑은 중국과 국내에서 제작되던 팔각형 사리구, 그리고 당대부터 유행한 중국의 조사탑, 승탑을 참조해 제작되는 과정에서 팔각원당이라는 독특한 구조를 완성했다. 하지만 장례법식으로서 화장이 보편화되기 이전이었기 때문에 시신은 지하에 별도로 매장 후 지상에 승려의 묘주처를 상징하기 위한 의미로 승탑을 건립했다. 현묘탑 건립은 기존의 장례법을 탈피해 화장방식으로 전환되는 시점에 축조됐다. 기존의 승탑은 시신을 지하에 매장하기 때문에 승탑의 규모와 사리를 봉안하기 위한 내부 시설에 대한 고려가 없었다. 반면 현묘탑은 승탑 내부에 사리구를 처음 봉안하게 되면서 사리공을 마련하기 위한 목적으로 규모가 확대되었고, 사리존숭의 사례를 석탑에서 구하는 과정에서 기능은 승탑, 형식은 석탑이라는 이원적 구조체계가 완성된 것이다. 현묘탑은 현묘탑비와 함께 승탑원이라는 동일공간에 배치되었다. 사역공간은 부처의 영역이기 때문에 제자의 묘탑을 부처와 동일 영역에 설치하는 것은 위계에 부합하지 않는다. 그 결과 사역 중심에서 벗어난 지역에 고승의 승탑을 세우는 전통이 시작되는데 법천사 현묘탑은 화장방식의 채용과 함께 그 시원을 개척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법천사는 고려 초 불교계의 핵심종파였던 법상종 사찰로, 법상종의 본산인 개경 현화사를 중심으로 지방으로 법상종을 확산시키는데 중요 역할을 담당했다. 특히 현묘탑의 주인공 해린은 원주지역의 호족출신이었기 때문에, 중앙정부와 지방호족 세력의 중계자 역할을 담당했던 것으로 보인다. 해린이 법상종의 중심인물로 부각된 배경에는 당시 외척세력 이자연의 지원이 중요했다. 이자연이 그의 아들 소현을 해린에게 출가시킴으로써 정치적 기준으로 지방호족과 외척세력의 결합이 이루어지게 된다. 이렇게 현묘탑은 법상종을 이용해 세력을 강화, 유지하려던 고려왕실과 인주 이씨 세력의 합작품으로 평가할 수 있으며, 기존 호족지원 아래 성장한 불교계를 통합하기 위한 목적으로 승탑의 구조와 장례법 역시 화장이라는 새로운 방식을 선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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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대학 > 환경디자인과 > 1. Journal Articl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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