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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군신화에 나타난 웅녀의 역할The Role of Woong-Nye in the Myth of Dan-Gun

Other Titles
The Role of Woong-Nye in the Myth of Dan-Gun
Authors
강영경
Issue Date
Jun-2012
Publisher
한국여성사학회
Keywords
고조선 단군 신화 웅녀 환웅 수렵사회 농경사회 신단수 국모; Cho-Sun; Dan-Gun; myth; Woong-Nyo; Whan-Woong; hunting-society; agrarian-society; altar-tree; the mother of the nation
Citation
여성과 역사, v.16, pp 37 - 68
Pages
32
Journal Title
여성과 역사
Volume
16
Start Page
37
End Page
68
URI
https://scholarworks.sookmyung.ac.kr/handle/2020.sw.sookmyung/52271
DOI
10.22511/women..16.201206.37
ISSN
1738-6691
Abstract
본 논문은 『삼국유사』 고조선조의 기록을 분석하여 웅녀의 역할을 살펴본것이다. 단군신화 속에서 곰이 인간으로 된 의미는 수렵생활을 하는 곰토템족이농경생활을 영위하는 환웅족의 선진적이고 안정적인 식량획득방법을 수용하여자신들에게 맞게 수렵문화의 기반 위에서 농경문화를 결합시킴으로써 풍요로운사회를 성취해 낸 의미를 지니고 있다. 웅녀는 인간이 되기 위해 神과 환웅에게기도했지만 환웅은 답이 없었다. 신이 제시한 쑥과 마늘은 우리 몸을 이롭게 해주는 식물성 食材이자 아픈 자를 치료해 주는 藥材에 관심을 가지고 적응하면서 관찰하고 그 효용가치를 알아 가면서 필요할 때 유용하게 쓸 수 있도록 보관해두고 비축하고 재배할 필요가 있는 식물임을 알게 해 준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그리고 신이 제시해 준 100일의 日光禁忌는 빛이 들지 않는 어두운 공간에서 외부와 차단된 채 100일을 견디어 내야 하는 것인데, 이는 정신적인 인내력이 필요함과함께 일정 기간 땅 속에 있다가 싹을 틔우는 농경의 기다림도 내포되어 있었다. 웅녀가 신이 제시한 조건을 견디어 내고 사람의 몸을 얻었다는 것은 유용한 식물의 재배에 대한 관심과 필요성 그리고 기다려야 하는 식물의 생리를 터득해 냈다는 의미이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웅녀가 농경생활의 이로움을 알고 이를 영위하는 인간이 되고 싶었지만 환웅이 다스리는 인간세상의 농경생활 속에 편입해 들어가거나 그에 예속된 것이 아니라는 점이었다. 웅녀는 자신들의 전통생활에 맞게 주체적으로 새로운 문화를 포용하고자 하였던 것이다. 그리하여 웅녀족은 농경생활인보다 더욱 풍요로우며 안정적이고 역동적인 생활을 영위할 수 있었다. 더구나 웅녀는 신이 제시한 백일의 기간을 단축하여 21일 만에 목표를 성취하였다. 웅녀가 얼마나 치열하게 능동적이고 주체적으로 목표를 성취해 냈는지보여주고 있다. 웅녀가 인간이 되고자하였던 궁극적인 목적은 공동체 모두의 안정적이고 풍요로운 생활을 위한 것으로서 共益을 위한 것이었다. 웅녀가 세운 또 하나의 서원은 새로운 생명을 잉태하여 출산하는 것이었다. 이를 실천하기 위해서 웅녀는 크고 위태로운 3개의 봉우리가 있는 크고 제일 높은산의 꼭대기에 있는 신단수 아래에 여러 번 가서 주술의례를 거행하였다. 그리하여 환웅은 거짓으로 변하여 웅녀와 결합하였다. ‘假化’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잉태를 원했던 주체는 웅녀였으며, 잉태를 하고 단군을 출산한 주체도 웅녀였다. 그리하여 웅녀는 단군의 어머니이자 고조선의 시조모였으며그녀가 죽은 후에는 고조선의 국모신 위치에 있었다. 이에 비해서 환웅은 단군의아버지로서 확고한 위치에 있지 않으며 그 역할도 불분명하고 고조선의 國父神으로서 숭배 받은 흔적은 나타나 있지 않으며 이후 한국의 역사에서 국부신에 대한숭배의 전통도 드러나지 않고 있다. 고조선은 춘추전국시대에 요하유역을 중심으로 동북아시아 지역에서 주변의나라와 짐승 가죽을 특산품으로 교역을 하고 있었고, 왕을 칭하면서 燕을 침공할만한 군사력을 가진 강력한 국가였으며, 연과 국경을 마주하면서 그 면적은 적어도 2000 리 이상의 영역을 소유했던 광대한 영역국가였다. 그리하여 고조선은기원전 2세기까지 동북아지역에서 가장 앞선 사회였고, 고조선의 청동기문화는황하유역의 청동기문화와 계통이 다르고 유목민의 오르도스식 청동기와도 구별되는 독창적인 성격을 지니면서 한국사의 독자성과 연결되는 상징적 의미를 지니고 있다. 이와 같이 동아시아 역사 속에서 독창적인 문화를 창출해냈으며 한국역사 속의 첫 고대국가인 고조선이 건국된 배경에는 명민하고 지혜로우며 담대하고 치열하게 성실하였던 웅녀가 있었기에 가능하였음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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