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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말・조선초 개성부의 위상The Status of Gaeseong-bu (開城府) in the Late Goryeo and Early Joseon Period

Other Titles
The Status of Gaeseong-bu (開城府) in the Late Goryeo and Early Joseon Period
Authors
박종진
Issue Date
Jun-2015
Publisher
연세대학교 국학연구원
Keywords
開城府; 開城留後司; 留守; 漢城府; 忠宣王; 5부; Gaeseong-bu (開城府); Gaeseong-yuhusa (開城留後司); Hanseong-bu (漢城府); Gaeseong-yusu (開成留守); King Chungseon (忠宣王)
Citation
동방학지, v.170, pp 29 - 51
Pages
23
Journal Title
동방학지
Volume
170
Start Page
29
End Page
51
URI
https://scholarworks.sookmyung.ac.kr/handle/2020.sw.sookmyung/5447
DOI
10.17788/dbhc.2015..170.002
ISSN
1226-6728
Abstract
이 글은 고려말・조선초 開城府의 위상을 고려시기 개성부의 변천과 비교하면서 살펴본 글이다. 조선 건국 직후 설치된 개성부는 1308년 고려 忠宣王이 복위하여 개편한 개성부에 토대를 두고 있다. 충선왕은 복위 후에 ‘경기영역’의 행정을 맡았던 개성부에 5部와 給田都監을 병합하여 개성부를 개편하였다. 이후 개성부는 도성인 개경 5부와 그 바깥인 ‘경기영역’의 행정을 총괄하는 관청이 되었다. 고려 성종 14년에 설치한 개성부는 개경 외곽의 赤縣과 畿縣을 관할하기 위한 관부였고, 문종 16년 개성부(知開城府事)는 경기 13현을 관할하는 지방 관부였다. 따라서 충선왕 복위년 이후 개성부는 본격적으로 수도 개경의 행정을 맡게 되었다. 조선 건국 후 개경은 수도의 지위를 유지하였고, 그에 따라 수도의 행정을 맡은 개성부 역시 고려 말의 위상을 유지하였다. 그러나 조선 태조가 1394년 10월 수도를 개성에서 한양으로 옮길 때 漢陽府는 漢城府로 개편되어 수도의 행정을 맡게 되었고 개성부는 開城留後司로 개편되어 옛 수도인 개성의 행정을 맡게 되었다. 정종 원년 2월에 정종이 수도를 개성으로 옮기면서 개성유후사의 위상은 높아졌지만 개성은 수도의 지위를 완전하게 회복하지 못한 채 여전히 유후사체제를 유지하였다. 정종이 개경으로 환도한 후부터 태종이 한양으로 다시 수도를 옮기게 되는 태종 5년 10월까지 개성유후사는 당연히 수도 개성에 대한 행정을 담당하였다. 따라서 개성은 수도의 지위를 유지하고는 있었지만 그 위상은 임시적인 것이었다. 더구나 태종 5년 10월 조선왕조가 수도를 다시 한양으로 옮기고, 세종 20년 개성유후사가 개성부로 개편되면서 개성은 수도 한양을 보좌하는 유수부로 그 위상이 정해졌다. 이후 개성부의 위상은 한성부와 분명히 구분되었다. 조선 초기 개성부의 위상은 성종 때 편찬된 <<경국대전>>에 수록되었다. <<경국대전>>에 규정된 개성부의 위상은 경관직 종2품아문으로 정2품아문인 한성부보다 한 단계 낮았다. 한편 개성부윤 중 1명이 경기관찰사를 겸하게 되면서 한성부와 한성부 관원들은 오로지 수도 한성부의 행정만 맡게 되었다. 이것은 개성부가 수도인 한양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경기의 중심 도시가 되었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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