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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0~30년대 기독교 절제운동의 논리와 양상 -금주금연운동을 중심으로-The Temperance Movement of the Korean Church in the 1920s­-1930s

Other Titles
The Temperance Movement of the Korean Church in the 1920s­-1930s
Authors
윤은순
Issue Date
Jun-2009
Publisher
한국민족운동사학회
Keywords
Christian; temperance movement; anti-drinking and anti-smoking; social movement; economy; religious; purification of society; 기독교; 절제운동; 금주금연; 사회운동; 경제; 종교; 사회정화
Citation
한국민족운동사연구, no.59, pp 127 - 166
Pages
40
Journal Title
한국민족운동사연구
Number
59
Start Page
127
End Page
166
URI
https://scholarworks.sookmyung.ac.kr/handle/2020.sw.sookmyung/55594
ISSN
1226-9980
Abstract
1920년대에 본격화된 기독교 절제운동은 금주금연운동이 가장 대표적인 활동이었다. 초기 내한한 청교도적 성향을 지닌 선교사들에게 영향을 받은 조선의 기독교인들은 신자의 본분으로서 술ㆍ담배ㆍ축첩의 금지를 받아들이고 능동적으로 이를 실천해 갔다. 개인적 종교적 차원에서 장려되고 받아들여졌던 절제의 윤리는 일제 강점 이후 본격적인 사회운동으로 등장하기 시작하는데, 이는 경제적 파탄에 대응하기 위한 것이었다. 토지조사사업, 산미증식계획으로 이어진 일제의 경제적 수탈은 조선 민중을 초근목피로도 연명이 어려운 상태로 몰아갔다. 이에 민족주의 계열은 물산장려운동에서 시작하여 농촌운동ㆍ협동조합운동을 전개하기에 이른다. 기독교계는 당면한 경제문제 해결을 위한 방법의 일환으로 농촌운동ㆍ절제운동을 추진한다. 절제운동은 한국기독교 양대 교단이었던 장로교와 감리교 뿐만 아니라 사회사업에 적극적이었던 구세군을 비롯하여 조선여자기독교절제회, 조선기독교절제운동회, 금주단연동맹 등의 다양한 사회운동단체를 통해 이루어졌다. 금주금연을 주장했던 데에는 경제ㆍ건강ㆍ종교적 이유와 목적이 있었다. 금주는 경제적으로 피폐된 조선 현실에서 불필요한 비용을 줄이는 절약의 차원에서, 신체와 정신의 건강을 위해서도, 개인의 성화와 사회의 정화를 위해서도 가장 필수적인 요소로 손꼽혔다. 구체적인 금주금연운동은 강연회와 선전시위, 언론ㆍ출판을 통한 계몽활동으로 이루어졌다. 각 절제운동단체에서 가장 주력한 부분이 전국 곳곳마다 강연회를 통해 금주금연의 필요성을 알리고 대규모 시위를 통해 이를 확산시키는 것이었다. 절제운동에는 기독교 정신, 혹은 도덕관념의 구현과 민족운동적 측면(‘경제를 살리자’, ‘죽어가는 민족을 구원하자’ 등등)이 맞물려 있다. 금주금연으로 육체적ㆍ정신적으로 건강한 삶을 가꾸고, 도덕의 부흥, 신체 건강, 재정이 부유하게 되는 이상적 개인과 사회를 꿈꾸며 전개된 운동이 절제운동이었다. 종교적 절제윤리와 개인적 도덕심을 사회운동으로 전환하여 민중의 각성과 동의를 이끌어내고 조직적 시위와 선전을 통해 대중적으로 널리 전개되었다는 점에서 사회운동으로서의 의의를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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